정은보 신임 금감원장이 인적쇄신을 위해 금감원 부원장과 부원장보 등 임원 전원의 사표 제출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윤석헌 전 원장 지우기 작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일 금감원 내외부에 따르면 정 원장은 최근 김근익 수석부원장을 비롯한 부원장 4명과 부원장보 10명 등 임원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적으로 금감원은 신임 원장 체제가 들어서면 기존 임원들의 재신임 차원에서 전원 사표를 제출받고 이 가운데 일부 임원을 교체하는 작업이 이뤄져왔다. 윤 전 원장도 마찬가지로 취임 뒤 임원들의 사표를 제출받았다.
정 원장의 이번 지시 역시 이런 통상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원래 새 원장이 오면 전원 사표를 받고 이 가운데 일부를 교체하는게 관행이었다"라며 "교체 가능성이 높은 일부 임원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조직을 흔들 정도로 큰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정권 말기 임기 9개월에 불과한 신임 원장이 큰 폭의 물갈이를 단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임기도 얼마 안되는데 지금 대폭 인사를 실시하게 되면 인사만 하다가 임기가 다 끝날 것"이라며 "대폭 인사보다는 임원 재신임을 위한 관행을 따르는 정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원장이 취임일성으로 감독 업무에 있어 규제 보다 지원을 강조하고, 검사 대상인 금융사와의 소통을 주문하는 등 이전 윤석헌 체제와 다른 길을 제시한 만큼 그동안의 관행을 넘어서는 수준의 물갈이가 실시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면서 "우리는 민간에 대해 '금융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로서 사후 교정뿐만 아니라 사전 예방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또, "시장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소비자와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각 분야 전문가의 조언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면서 금융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이는 '금융권 호랑이'로 불리며 금융사들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윤석헌 전 원장 체제와는 사뭇 다른 기조다.
진보 학자 출신인 윤 전 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키코와 즉시연금 등 해묵은 금융 분쟁의 해결을 요구하며 금융사들을 압박했다. 또,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펀드 등 사모펀드 부실 판매 책임을 물어 금융사 CEO에게 중징계를 결정하는 등 금융사들에 대한 지원 보다는 규제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정 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시장친화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윤 전 원장 체제 하에 금융사에 대한 강한 검사와 징계를 주도한 임원들이 1차적으로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정 원장이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 책임론을 들고 나온 점도 대폭 물갈이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사모펀드 부실로 인한 금융소비자의 대규모 피해는 금융시장의 신뢰 훼손과 함께 금융당국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모펀드 사태로 징계를 받은 금융사들은 금융당국 역시 과도한 규제완화와 사전검사 미흡 등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음에도 자신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정 원장이 이런 여론을 받아들여 사모펀드 사태 책임론이 불거진 임원들을 교체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