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여야가 합의한 국회 상임위원장 중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서다.
민주당은 '합의 백지화'를 요구하며 자중지란에 빠졌고, 국민의힘은 '백지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선수를 치는 모양새다.
여야는 그동안 여당이 독식했던 18개 상임위원장을 각각 11대 7로 배분하기로,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전격 합의했다.
법사위의 경우 여야는 월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체계·자구 심사를 하지 못하도록 했고 심사기간도 기존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입법독주'라는 그동안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민의힘은 무력했던 국회 주도권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타협책으로 평가받았다.
문제는 이 같은 합의안에도 민주당 내 강경파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세다는 점이다.
"법사위를 내주고는 개혁은 있을 수 없고 결국 대선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합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이면엔 그동안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의 내용까지 건드리면서 고의적으로 시간을 끄는 등 정부·여당의 입법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견제장치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에 법사위원장을 내주면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공들였던 각종 개혁 입법들에 제동이 걸리거나 무력화될 것이라는 절박감이 묻어있다.
이를 의식한 국민의힘은 "합의를 깨는 건 국회를 진흙탕 속에 밀어 넣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1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밀고 당기며 최종적으로 합의한 것인데 합의문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깨겠다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명분이 어떻든 약속을 여반장으로 뒤집는다면 신뢰는 결코 생겨날 수 없다.
정당 간 신뢰는커녕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난 정치 불신 또한 더해질 게 명약관화하다.
정치가 정책과 비전, 대안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라 당파적 이해와 편 가르기로 대립하는 모순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정치인, 그리고 정치 불신이 매번 한국 사회의 그릇된 관행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강성 지지층과 유력 대선 주자들의 반발이 격화되면 합의가 흔들릴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다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번에야말로 민주당이 협치의 본을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