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부부장은 담화에서 한미연합훈련이 "신뢰회복의 걸음을 다시 떼기 바라는 북남(남북)수뇌들의 의지를 심히 훼손시키고 북남(남북)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와 군대는 남조선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려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하여 예의주시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김여정 부부장은 특히 "우리는 합동군사연습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고 말해, 요구 사항이 한미연합훈련의 축소가 아니라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임을 분명히 했다.
김여정 담화로 한미연합훈련 문제 정치쟁점화 가능성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개입'으로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논의의 지형도 바뀌고 있다. 야권이 그동안 대북전단살포금지법안에 대해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비난한 것처럼 이번 한미연합훈련 문제도 정치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당장 국민의 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2일 SNS에서 "김여정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협박성 담화를 발표했다"며, 담화의 내용이 "마치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김여정 담화의 여파로 대선주자들의 대북관이 때 이르게 정치 이슈로 부상할 조짐인 것이다. 정부가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든 '김여정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야권의 비난도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조정이나 연기를 통해 남북대화 국면의 확대를 모색하던 정부부처도 곤혹스런 상황에 몰렸다.
김여정 강경 담화로 한미연합훈련 논의 지형도 크게 좁아져
그러나 이런 당부에도 불구하고 김여정 부부장은 절제되지 않은 매우 경색된 담화를 던졌고,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국내 논의 지형을 매우 좁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여정의 담화 때문에라도 이번 한미연합훈련은 하지 않을 수 없는 훈련이 된 셈이다.한미 간에, 정부 부처 간에 의견조율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이날 8월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미연합훈련에 관한 한 안내느니 보다 훨씬 못한 담화로 작용한 셈이다
북한에서 대남·대미 등 대외관계를 총괄하는 김여정 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 담화가 국내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를 리는 없다. 그럼에도 훈련 중단을 요구한 데는 남북정상의 합의에 따른 연락채널 복원 이후 한국과 미국의 의지와 동향을 시험해보려는 심산도 읽힌다.
남북연락채널 복원 이후 한미의 대화 의지 시험대에 올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북한은 우리 정부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들의 입장과 원칙을 밝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라며, "훈련 중단을 요구해 남북, 북미 대화의 진전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여정 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북남(남북)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한 만큼, 훈련이 예정대로 실시된다면 향후 남북관계의 기상도는 '흐려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남북정상의 연락채널 복원 합의에 대해 "신뢰를 회복하고 화해를 도모하는 큰 걸음"이라고 평가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와도 괴리가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남북연락채널 이후 전개되는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조절을 의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남북정상회담 거론되는 상황도 부담? "통신선 연결 그 이상 의미 달지 말아야"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남북연락채널 복원이후 아직 북미대화의 진전 여부가 불투명한데 일각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나오는 지금 상황을 북한이 부담스럽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며, "따라서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정부 입장을 밝히되 이와는 별개로 북한이 명분을 갖고 대화로 나올 수 있는 기회들을 차분하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실제 김여정 부부장은 이번 담화에서 "지금 남조선 안팎에서는 나름대로 그(통신선 복원의) 의미를 확대하여 해석하고 있으며 지어 북남(남북)수뇌회담문제까지 여론화하고 있던데 나는 때 이른 경솔한 판단이라고 생각 한다"며, "통신연락선들의 복원에 대해 단절되었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놓은 것뿐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한미훈련에 대한 北 '원칙 표명'으로 軍 불만 달래는 의도?
북한은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무산 이후 지난해 6월 남북관계를 '대적관계'로 규정한 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북한 군부와 인민들 사이에서 이런 기억이 생생할 텐데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다시 유화기조로 틀게 되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올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북정상의 합의와 김여정의 담화는 아직 노동신문에 보도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김정은 위원장과는 별도 영역에서 악역을 담당해 온 김여정이 이번에도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북한 군부 등의 불만을 무마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예의주시해 볼 주체로 "우리 정부와 군대"를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속도조절 불가피하나 거꾸로 갈 가능성은 없는 듯
이런 요인들로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이 불가피해보이지만, 그렇다고 통신선 단절 등 거꾸로 갈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미연합훈련은 예년보다 축소된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북한이 이에 대해 비판을 해도 통신선을 다시 닫는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남북 대화의 시점이 늦춰질 것"이라며, "북한도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남북정상의 친서 등을 통해 적절히 설명하고 대화를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지난달 29일 화상회의 시스템 구축 논의를 제안하는 통지문을 남측 연락사무소장 명의로 북측에 보냈으나 북한은 아직 답신이 없는 상태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북측이 호응해오는 대로 영상장비의 호환성 점검, 통신망 연결, 운용 테스트 등을 신속하게 진행해 남북 영상회담 체계를 조속히 갖출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