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 특수부대원들이 40년 동안 사용해 온 K-1A 기관단총을 교체하려던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이 잇따라 난관에 빠졌다.
일선 부대에서는 그만큼 거센 비판이 나온다.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총기 업체와 독점 체제에서 혁신에 소홀했던 다른 총기 업체, 그리고 몇 년 동안 총을 사오지도 개발하지도 못한 군 당국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CBS노컷뉴스는 취재를 통해 최근 여러 해 동안 이 사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봤다.
'참수작전'과 함께 오래된 총 교체 추진···'외산' 도입 선택지도 있었다
2010년대 중반 군 당국은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현 '핵·WMD 대응체계') 가운데 하나로 대량응징보복체계(KMPR, 현 '압도적 대응')를 수립했다. 중심 내용은 유사시 미사일 또는 특수부대를 통해 적 수뇌부를 빠르게 제거, 지휘체계를 마비시키고 전쟁을 일찍 끝낸다는 참수(斬首)작전이었다.
이를 위해선 최정예로 꼽히는 특전사 707특수임무대대 외에도, 현장에서 이들을 지원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 특수타격(DA) 임무도 수행할 수 있는 미 육군 75레인저연대와 같은 부대가 필요하다.
군은 이를 위해 2017년 12월 특전사 13공수특전여단을 13특수임무여단으로 개편하며 이런 임무를 부여했다. 707특수임무대대 또한 2019년 707특수임무단으로 확대개편됐다.
하지만 벨기에 FN사 SCAR-L을 도입해 사용하는 707특수임무단을 제외하면 이들이 쓰는 총기는 1980년대 초반 개발된 K-1A 기관단총이다. 때문에 조준경과 표적지시기 등 필요한 부가장비를 달기 어려우며 오래 전에 설계돼 현대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군 당국은 이를 교체하기 위해 5.56mm 소총탄을 사용하는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을 시작했다. 일단 2형(구매) 사업을 통해 1천여정을 사서 지급하고, 그 뒤 1형(체계개발) 사업으로 1만 5천여정을 도입해 구식 K-1A를 퇴출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두 사업은 각각 2019년과 2020년에 첫 공고가 나왔다.
하지만 정식으로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도 일선 특수부대원들은 투입되면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극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여러 실전에서 검증된 외산 총기 도입을 원해 왔다. K-1A는 2010년대 중후반 시점에서도 개발된 지 이미 30년 이상 지났기 때문이다.
국산 총기는 평소 유지보수에 필요한 부품 수급 등이 쉽다는 장점이 분명하다. 실제로 독일 H&K사 HK416을 도입해 사용하던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은 여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특수부대원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수많은 전투를 통해 신뢰성이 확인된 총기를 보다 믿는 일이 당연하다.
합동참모본부는 방위사업청이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정식 공고를 내기 훨씬 전인 2017년쯤 총기를 교체하기 위한 긴급소요결정 등을 진행했는데, 2가지 총 가운데 하나를 구매하는 방식이 유력했다고 전해진다. SCAR-L과 HK416이다.
신흥 총기 업체로 떠오르던 A사,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임원 5명 기소
그런데 이미 이 시점에서 국내 총기 업체 A사에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ROC를 포함한 전력소요서 등 군사기밀이 새고 있었다.
방위사업청은 A사를 2020년 6월 1형(체계개발) 사업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했다. 당시 A사와 경쟁업체 B사가 받은 평가점수 차이는 0.1점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달에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압수수색을 진행해 불법 유출된 군사기밀들을 회사에서 찾아냈다.
수사를 진행한 국방부 검찰단과 전주지검은 최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A사 대표 김모씨, 전직 임원 송모씨 등 전현직 임원 5명을 재판에 넘겼다.
군 검찰 공소에 따르면 송씨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합동참모회의 등에서 다뤄지거나 결정된 5.56mm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5.56mm 차기 경기관총(K-15), 신형 7.62mm 기관총(구 K-12, 현 K-16), 12.7mm 저격소총 사업 등과 관련된 군사기밀을 자신이 묵는 숙소 등지에서 A사 관계자들에게 건네며 내용을 설명해 줬다.
그는 2018년 군을 떠나기 전까지 육군 중령이었다. 송씨는 향후 방위사업청이 발주하겠다고 예상되는 총기 개발 사업을 A사가 따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대가로 대표 김씨 등에게 금품 6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송씨 측은 재판에서 유출 대가로 A사에 취업하거나 금품을 받지는 않았다며 대가성을 부인하고, 600여만원 가운데 500만원은 퇴직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밀 유출 혐의 자체는 모두 인정했다.
사건 여파로 방사청은 올해 6월 해당 사업을 잠정 중단하고, A사에 대한 부정당업자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 제재 결과에 따라선 계약 취소도 가능하니 사실상 사업을 다시 하겠다는 뜻이다.
국산 총기 생산은 오랫동안 B사 독점 체제였다. 하지만 여러 해 전부터 A사가 신생 총기 업체로 떠오르면서 두 회사는 군 납품을 놓고 경쟁해 왔다. 이러한 변화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독점 체제에서는 경쟁을 통한 발전이 어려워서다.
지난 2018년 A사는 UAE '카라칼'사 총기를 면허생산한 자사 소총을 해군 특수전전단에 60여정 납품했다. 그런데 그 이후인 2019년 11월 첫 공고가 난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2형(구매) 사업은 외산이 아니라 국산 구매였다. 이 사업은 1차에서 유찰됐다.
2020년 1월 2차 재공고가 난 뒤, 올해까지 진행됐던 시험평가에서 합동참모본부는 A사와 B사 둘 모두에 대해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올해 6월에 3차 재공고가 났는데 사업은 또다시 유찰됐다.
방위사업청은 올해 7월 2형(구매) 사업을 4차로 재공고했다. 현재 A사가 처한 상황과 함께 국내 총기 업체가 A사와 B사 두 곳 말고는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해당 사업은 B사가 승리하는 결말이 사실상 예정돼 있다.
여러 이유로 도입 늦춰지는 동안 K-1A는 '마르고 닳도록'
하지만 일선 특수부대원들은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일단 방위사업청을 통한 전력화 사업은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오래된 K-1A를 계속 써야 한다는 점이 큰 문제다.군은 일단 개발 당시 구식 KM193(미군 M193) 탄에 맞춰져 있던 K-1A 총열을 현용 K100(미군 M855) 탄에 맞는 총열로 모두 교체했다. 당분간 K-1A를 계속 운용하기 위한 방책이지만, 여전히 현대전에 쓰기에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상 승리자가 된 B사에 대해서도 비판이 크다. A사가 떠오르기 전에는 다른 국내 총기 회사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B사는 총기 납품을 독식했다. 때문에 신제품이나 세계적 트렌드에 맞는 총기를 개발하는 일에는 뒤처졌다는 평가가 많다.
B사가 신제품을 개발해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에 뛰어들긴 했지만, 이 또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총기를 잘 아는 실제 사용자들 의견을 받아들여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일선에서는 외산 총기 구매가 흐지부지되고, 2형 사업이 처음부터 국산 구매로 시작된 일에 대해 가장 불만이 많다. 물론 국산 총기는 부품 수급 등 유지보수가 쉽기 때문에 많은 물량을 도입할수록 국산 도입이 필연적이다.
외산보다는 국산 도입이 국내 경제에 긍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군 당국도 예산을 관할하는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1천여정이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물량에까지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다.
특히 707특수임무단과 13특수임무여단은 임무상 다른 특전사 여단들과 달리 1초 미만 찰나에 생사가 결정되는 실내전을 치를 일이 많으며, 때문에 위험도가 매우 높아 어떤 상황에서도 발사가 되는 신뢰할 만한 총기를 지급해야 합리적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결과적으로 군사기밀 유출 혐의를 받는 A사와 함께 독점 체제에서 혁신에 소홀했던 B사, 그리고 새 총기를 사오지도 개발하지도 못한 군 당국까지 좋지 않은 의미로 '3박자'가 어우러진 셈이다. 그러는 사이 개발된 지 40년 지난 K-1A는 여전히 특전사 모든 부대 일선에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