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해 7월 30일 국회를 통과하고 이튿날 국무회의를 거쳐 시행된 지 1년.
그사이 전셋값은 이전보다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고, '선한 정책 의도'가 무색하게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와 집주인 양쪽을 덮쳤다.
아파트 전세난, 서울 만의 얘기 아니다
2019년 2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전세계약을 하고 들어온 A씨는 내년 2월 계약 만기를 앞두고 불안한 상태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호소했다.
2년도 안 되는 사이 집주인이 지방 거주민으로 바뀌고, 전셋값도 2억 원이나 오르면서 내년에 쓰려던 계약갱신청구권이 (집주인 실거주 등 사유로) 무력해질까 우려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차선책으로 서울에서 월세를 주고 있던 오래된 아파트(자가)로 들어가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임대료 한 번 밀린 적 없던 세입자를 본의 아니게 내보내야 하는 데다, 신도시에 위치해 생활이 편한 지금의 전셋집이 더 마음에 드는 탓에 이 역시 달갑지 않은 선택지다.
임대차법 통과 이후 1년.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A씨와 비슷한 사례가 서울을 비롯한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1년 사이 상승세는 촘촘하게 이어졌다. KB부동산 월간 주택가격동향을 보면 임대차법 통과 1년 전인 2019년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4억 6353만 원(소수 첫째 자릿수부터 버림 기준)이었다.
반년 전인 같은 해 1월에 비해 오히려 364만 원 정도 내려간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1~7월) 인천과 경기, 6대 광역시(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는 물론 전국 단위로도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반년간 하향세를 기록하던 상황이었다.
이후 공급 부족 등으로 상승세가 다시 시작된 가운데, 단숨에 기름을 끼얹은 건 임대차법 통과였다.
2020년 7월 기준 4억 9921만 원은 이듬해 1월 5억 8827만 원으로, 이번 달인 7월 기준 6억 3483만 원으로 반년마다 수천만 원씩 뛰었다. 특히 임대차법 통과 직후인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6억 562만 원) 사이 1년도 안 되는 기간 내 상승액은 1억 원이 넘었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올해 7월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4억 3381만 원, 6대 광역시는 2억 4257만 원으로 지난해 7월 대비 각각 9645만 원, 3792만 원씩 올랐다. 전국 단위로도 지난해 7월(2억 5554만 원)과 올해 7월(3억 1833만 원) 사이 6239만 원 올랐다.
상승세, 전국으로, 또 비(非)아파트로…정책의 '선한 의도'와 현실 사이
전세 상승장이 서울에서 그치지 않고 수도권, 지방에도 영향을 미쳤듯, 비아파트 역시 이러한 상승 행렬을 따라가는 상황이다.
KB부동산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의 연립주택 평균 전세가격은 2019년 1~7월 사이 5만 원, 2019년 7월~2020년 1월 사이 302만 원, 2020년 1~7월 사이 257만 원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 사이 상승액은 1787만 원, 이어 올해 1~7월 사이엔 912만 원을 기록하면서 아파트와 같이 상승세가 두터워진 모양새였다.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도 늘어난 상태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5건에 불과했던 임대차 계약갱신·종료 관련 분쟁조정 접수 건수는 법 시행 후인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 사이 273건으로 11배 가까이 늘었다.
임대차법 1년, 전문가들은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적절치 않은 타이밍에 정책이 투입되면 시장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세삼하게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다시 신규 계약에도 전월세 상한제를 적용하거나 계약갱신 가능 기간을 6년으로 확대하는 개정 방향이 거론되기도 한다.
다만 정부는 규제 완화든, 강화든 당분간은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28일 관계부처 "임대차법은 임대차시장에서 볼 때 30년 만에 가장 큰 제도적 변화가 아닌가 싶다"며 "그런 만큼 어렵게 제도화한 만큼, 당분간은 안착에 주력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