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상여가 등장하더니 이내 서너 명의 촌로들이 삭발을 시작한다.(관련기사: "세종 폐기물 처리시설 무효화하라" 삭발식·상여 등장에 고사까지)
촌로들이 뙤약볕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뭘까. 온열환자를 대비한 구급차는 세종시의 최선이었을까.
혐오시설 설치를 둘러싼 갈등이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추진 과정과 이로 인한 행정 불신이 사태 핵심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자로서 지방의원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다.
갑작스런 부지 변경
세종시는 크게 2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정부세종청사 등이 입지한 신도심인 '행복도시'와 조치원읍을 비롯한 그 외 읍면동 구도심 지역.친환경종합타운(폐기물 처리시설)은 행복도시 4~6생활권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로 당초 신도심인 행복도시 내 6-1생활권에 조성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예정부지가 행복도시 밖 구도심인 전동면 송성리로 변경됐고 읍면동 주민들은 "행복도시 쓰레기를 읍면동으로 떠넘긴다"는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주민은 동의한 적 없는데…행정 신뢰 추락"
세종시는 '주민 찬성'을 사업 추진 근거로 제시한다. '부지 경계 300m 이내 거주 세대 80% 이상 찬성'의 요건에 충족한다는 것. 세종시에 따르면 대상 24세대 가운데 17세대가 찬성의견을 제출했다.하지만 문제는 17명 가운데 16명이 특정 요양원 입소자 등 관련자라는 것. "장기요양 3~5등급과 등급 외 환자까지 받고 있는 양로시설 환자들의 인지 능력이 의문"이라는 의구심이 주민들 사이에서 빗발쳤다.
이 같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세종시가 요양원 입소자들을 거주민으로 간주해 사업을 강행하는 모습에 주민들은 행정에 깊은 반감과 불신을 갖게 됐다.
우리 동네 혐오시설을 다른 동네 주민이 결정?
"남아 있어 봤자 들러리밖에 안 된다" 폐기물처리시설 입지선정위원회에 참여했던 주민 5명과 시의원 1명이 최근 위원직을 사퇴했다. 시설 건립 반대 측 사람들이다.이춘희 세종시장이 "반대를 하더라도 위원회에 들어와서 반대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이미 결정된 사항에 거수기 노릇밖에 할 수 없는 위원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맞받아쳤다.
이런 가운데 세종시가 최근 주민대표 5명과 시의원 2명을 재선정했다. 예정부지인 송성리와는 무관한 '다른 동네' 주민들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동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여부가 다른 동네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세종시는 "조례상 시장이 위원을 선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강조한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지만 '법 뒤에 숨은 말'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치킨게임, 중재자가 없다…지방의원 역할 기대"
폐기물 처리시설과 관련해 부지 변경과 공모에 재공모를 거듭한 세종시 입장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해당 시설이 꼭 필요한 시설인만큼 '밀어붙이기식'이라거나 '무리수'라는 지적에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행정에 대한 불신과 혐오시설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는 주민과 '행정의 시간표'만을 고집하는 세종시의 치킨게임이 거듭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방의원들의 중재자 역할을 촉구한다. 주민과 행정을 연계하고 갈등 사안에 대해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정무적 기능 역시 지방의회의 역할 중 하나라는 이유에서다.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성은정 사무처장은 "세종의 경우 친환경종합타운과 도램마을 임대료 문제 등이 행정과 주민 간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데, 문제 해결을 위한 지방의원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의원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당파와 정리정략을 떠나 주민들을 위한 방법 모색에 나서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종시는 친환경종합타운 설치 지역에 약 240억 원 예산이 투입되는 수영장과 워터파크, 체육시설 등 주민이 원하는 시설을 설치하고 매년 10억 원 안팎의 주민지원기금도 조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