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7번의 노·사·공익 합의 중 5번은 최임위 제도가 막 발을 내디뎠던 90년대에 집중됐고, 2000년대 들어서는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만 합의에 성공한 뒤 13년 동안 최저임금 심의는 번번이 파행을 거듭했다.
반복되는 파행, 번갯불 콩 구워먹는 심의…결론은 언제나 공익위원 마음대로
2022년도 최저임금을 정한 지난 12일 최임위 회의에서도 '실질적인 논의와 동떨어진 최초요구안 제시-평행선 달리는 수정안 대립-공익위원 안 제시에 양측 불복 및 퇴장'이라는 노사 갈등은 어김없이 반복됐다.이처럼 반복되는 파행은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공익위원이 각각 9명씩 총 27명이 모여 이뤄진 최임위 구성 자체에 있다. 최저임금을 최대한 낮추려는 사용자위원과 높이려는 근로자위원의 입장이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공익위원이 사실상 일방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자연히 노사 모두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공익위원 입맛대로 정해지는 최저임금 심의를 굳이 오래 진행할 까닭도 없다. 올해 노사 양측 최초요구안이 제시된 때는 지난달 29일 6차 전원회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9차 전원회의까지 2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단 4차례 열린 회의 중에서도 지난 8일 8차 전원회의는 민주노총 측 근로자위원들이 퇴장해 정상적인 논의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현행 최임위는 회의 모두발언과 요약된 회의 결과만을 공개할 뿐, 구체적으로 각 위원이 어떤 내용에 대해 무슨 발언을 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8일 민주노총 측 근로자위원들이 퇴장하면서 "사용자위원 등이 노동 비하 발언을 반복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시민들은 진위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 사무처장은 "외부 참관·배석이나 언론 취재를 요구한 끝에 모두발언이 공개되고 있는데, 오히려 노사 간의 대립 양상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사회적인 목소리가 위원회를 통해 대변되고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겉만 번지르르한 '사회적 합의'…공익위원 추천권은 나누고, 정부 책임은 더하라
이처럼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9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추진했다. 전문가위원들이 미리 심의구간을 정하면 노·사·공익위원들이 구간 안에서 최종결과를 정하는 방식이었다.하지만 노·사 양측 요구안을 받은 공익위원이 내놓던 '심의촉진구간'을 전문가위원이 미리 제시하도록 순서만 바꿀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은 채 국회 문턱도 넘기지 못했다.
해묵은 최임위 논의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더는 정부가 공익위원의 뒤에 숨은 채 간접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하면서 기존의 어느 정부보다도 최저임금 인상을 강조했고, 최저시급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도 세웠다.
이 때문에 차라리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공익위원 추천 권한을 노사나 국회에 나누자는 의견도 제시된다. 노사 양극단에 쏠려 중심을 잡기 어려운 최임위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논의가 풍성해지려면 공익위원의 인재창고를 다양하게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다른 한편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최임위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선애 임금·HR정책팀장은 "관행적으로 노·사·공익위원이 모여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방식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선임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정부가 최저임금의 중장기 목표를 정하고, 이에 따라 매년 목표치를 기준으로 물가나 경제성장률, 소득 분배율 등을 가감하면 노사 모두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공익위원을 지정하고도 최저임금 결과에 대해 '위원들이 결정했으니 관여할 수 없다'고 면피하고 있다"며 "최임위가 정한 결과를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려서 책임을 지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