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느 청소노동자의 죽음이 외치는 것

서울대 기숙사 내 청소노동자 휴게실. 박종민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대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던 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 그런데 유족과 동료들은 이 청소노동자가 숨진 이유가 직장 내의 괴롭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숨진 원인이 정확히 괴롭힘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유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지난 6월 새로운 관리자가 부임한 이후 청소노동자들은 학생들처럼 필기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시험의 내용은 더 황당하다. 건물의 명칭을 영어와 한자로 쓰라는 문항이 있는가 하면, 건물의 준공연도는 언제 인지를 묻는 문제도 있다. 건물을 깨끗하게 유지, 관리하는 청소 업무에 이런 지식이 왜 필요한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험 성적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이 기이한 시험과 성적 공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와 모욕감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및 유족 등이 지난 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청소노동자 A씨 사망과 관련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을 규탄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갑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자 직원은 깔끔한 정장과 구두를 신어야 하고, 여직원들은 가급적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남자직원들에게 정장과 구두를 요구한 것도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옷'이라는 모호한 기준에는 여성차별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도 어른거린다.
 
새로 부임한 관리자가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인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지시에 무조건 순종하는 수직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청소노동자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월감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자신이 관리하는 직원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장악하겠다는 시도는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故최희석씨의 경비실 앞에서 입주민이 애도를 하는 모습. 이한형 기자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아파트 경비노동자에 대한 악질적인 갑질은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만들지 못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었다.
 
아파트 주민에게 여러 차례 학대당하고 폭행까지 당했던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까지 발생하고서야 부랴부랴 보완책 마련에 나섰고,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및 개정안'이 9일 입법 예고됐다.
 
오는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이 개정안에 따라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업무는 경비와 청소 환경관리, 재활용 분리배출 정리·단속 등으로 제한되고, 택배배달이나 개인차량 이동 주차 같은 업무는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입주민이 경비노동자를 자신의 비서처럼 부리는 갑질은 이제 할 수 없고, 이런 요구가 강압적으로 이뤄지면 과태료 등이 부과된다는 뜻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및 유족 등이 지난 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청소노동자 A씨 사망과 관련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을 규탄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어떤 철학자는 "정치는 권력에 정의라는 개념을 적용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권력이라면, 정의를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강제적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권력(정부)이 마련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법률'밖에 없다.
 
우리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고된 일을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격권과 쾌적한 노동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강제적인 제재수단이 반드시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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