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6일 미국 정부가 최근 한미 양자정책대화(BPD) 계기에 5.18 민주화운동 관련 미국 측 비밀해제 문서 사본 21건을 전달 받아 분석한 결과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미국 측은 지난해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43건에 이어 올해 5월에도 14건을 우리 측에 전달한 바 있다.
이번에 추가 공개된 21건은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 정부에 보낸 주요 인사 면담록이나 한국 상황보고 등이며, 이날 중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인계될 예정이다.
이들 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관은 12.12 직후인 1979년 12월 15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와의 면담에서 자신은 정치적 야심이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정치발전 계획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12.12에 대해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10월26일) 수사 과정에서 정승화 총장에 대한 조사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군 부대를 동원한 것은 적법한 체포 명령에 대한 정 총장 측의 저항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정 총장을 체포하려 했지만 최 대통령이 거절했기 때문에 승인 없이 체포한 것이라고 밝혀 스스로 모순을 드러냈다.
최 대통령의 경우는 이듬해인 1980년 1월 10일 글라이스틴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12.12 이후 한국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고 군부 간 갈등도 거의 치유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며칠 뒤인 1월 17일 방한 중인 리처드 홀부르크 미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와의 면담에서 정치 발전과 개헌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는 최 대통령이 12.12 대응 과정에 이미 무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신군부의 야심과 국정 상황에 대해 전혀 현실적 판단을 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한편 최광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면담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앞두고 시민군에 대한 사전 통보 여부와 관련, 강력한 저항이 예상됨을 이유로 사전 통보 없이 전격 진압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