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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살 자신이 없다" 수원역 집창촌 폐쇄…길 잃은 여성들 (계속) |
이제는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수원역 앞 집창촌 성매매 여성 A씨(30대)의 얘기다.
◇일터 상실 '가족 부양·생계' 부담, 통보식 지원책 '남 얘기'
어려서부터 가족은 할머니뿐이었다. 유일한 피붙이인 할머니가 암에 걸리면서 들어갈 돈이 감당이 안 됐다.
"식당, 편의점, 카페 등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지만 병원비까지 내기 힘들었어요. 그 정도 벌이로는 할머니를 돌볼 방법이 없었죠."
그렇게 그는 4년 전 수원역 앞 집창촌에 발을 들였다.
몇 달 전부터 업소 폐쇄 얘기가 들렸다. 그 전부터 말이 나오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길 건너 고층 아파트가 올라간 광경을 지켜보면서 다른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사장님(포주)이 12월까진 영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은 5월을 넘기자마자 닫혔다. 그로선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업주들하고 협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었어요. 난데없이 경찰이 들이닥쳐 불 끄라고 소리치니까 겁이 날 수밖에 없죠."
이미 지나버린 일을 돌이킬 순 없다. 선택의 시간이다. 또 다른 성매매집결지를 찾아갈지, 수원시가 지원해주겠다는 자활지원을 받아들일지.
폐쇄 소문이 나돌 때쯤 시민단체로부터 재활지원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주거비 800만 원에 맞춰 방을 구하기가 힘든 데다 월 생활비 100만 원으로는 가족 뒷바라지도 벅차다.
직업훈련비로 360만 원을 준다는 말에 직업을 바꿀까도 고민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녀는 자신이 없다.
"배운 게 도둑질뿐이라 이력서를 쓸 곳도, 받아주는 곳도 없어요."
제대로 도움을 줄지, 행여 신분이 노출되는 건 아닌지 확신이 서질 않는 것도 지원 신청을 망설이는 이유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른데 실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여성들에게 직접 듣지를 않아요. 무시 받는 느낌이랄까. 폐쇄 일정도 막 바꿨는데 아가씨들 신상정보 보호가 잘 지켜질지…"
◇벗어날 수 없는 '빚의 굴레'…주거 불안·전업 애로도
A씨처럼 자활지원을 거부한 채 시를 상대로 보상책 마련을 촉구하며 업주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 여성은 20여명. 나머지 대부분의 여성들은 또 다른 업소로 떠나는 등 자취를 감췄다.
10년 전 사업부도로 가족들 생계를 떠안게 된 B씨(40대) 역시 그렇다. 외동딸인 그는 암에 걸린 아버지와 혼자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를 돌본다.
옷가게 점원, 일반 사무직 등 갖은 일을 해봐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이자를 당해낼 수 없었다. 여기에 업소에서 빌린 돈에 방세, 병원비까지 더해져 다달이 고정지출만 300만 원이다.
"단기간에 돈을 벌려면 이 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일터가 갑자기 사라져 막막합니다."
그렇다고 지자체 도움을 받겠다고 나설 수도 없다. 탈성매매가 지원 조건인데 행여 지원만 받고 나서 생활고 때문에 다시 업소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망설여져서다.
중년에 접어든 그가 새 직업을 찾는 일은 더 험난하다. "설거지도 경력이 있어야 하고 코로나로 배운 사람들조차 취업이 힘든데 나이 먹고 어디서 일을 구하겠느냐"는 것이다.
얼마 전 극단적 선택을 한 여성 업주를 떠올리면서는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두렵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B씨는 "곧 가게들이 철거되면 당장 지낼 곳이 없어 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원시 관계자는 "타 지역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법률 근거에 맞춰 종사자에 대한 합리적인 지원 규모를 설정한 것"이라며 "일시불 형태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보다 지속적인 지원으로 탈성매매를 도모하는 데 근본 취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영업 중단에 따른 손실금과 이주비 보상 등을 요구해 온 일부 업주와 종사자 여성들은 전날부터 다시 영업을 재개하겠다고 나선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