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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근로시간 줄이면 일자리가 생긴다? (계속) |
근로시간 단축을 논의할 때, 주로 언급되는 이론상 효과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는 전제하에 '노동시간 100시간 감소마다 고용률이 1.6%씩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근로시간 단축 효과는 현실에서는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근로시간은 단축됐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실제로 감소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연간근로시간은 2017년 2014시간에서 2018년 1986시간, 2019년 1978시간, 2020년 1952시간으로 점차 줄었다.
노동자의 삶의 질도 좋아졌다.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금 근로자의 '근로시간 만족도'는 2017년 28%에 비해 34.5%로 증가했다. 일자리 관련한 전반적인 만족도 역시 32.3%로 2년 전보다 4.6% 상승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 만족 비중이 높아졌다. 국회 사무처가 진행한 '국민이 뽑은 20대 국회의 좋은 입법(사회문화환경 분야)'에서 '근로시간단축법'이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해당 기간 취업자 수가 증가한 것은 맞지만 대부분 정부 재원이 투입되는 단기·공공기관 근로자 등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경제원이 2019년 펴낸 '근로시간을 고려한 취업자 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년 동안 제조업 종사자는 15만 2천 명이 감소한 반면, 정부 재원이 많이 필요한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은 26만 3천 명이 증가했다.
아울러 60대 이상 취업자는 59만 4천 명 상승한 반면 30~40대 취업자는 37만 명 감소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보고서는 "주 36시간 미만으로 일한 취업자는 100만 5천 명이 증가했는데, 주 1~17시간 초단시간 일자리는 49만 6천 명, 주 18~35시간 단시간 일자리는 51만 명이 증가하는 등 대부분이 단기 일자리였다"며 "오히려 주 36시간 이상 일한 취업자는 71만 5천 명이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52시간제를 시행하면서 동시에 공공근로 확대도 시행했는데, 모두 고용률에 포함됐다. 초단시간 일자리만 대략 250만개 늘어났는데, 전부 취업자로 잡히면서 공식 실업률이 실제 실업 상황을 과소추정하고 있다"며 "과격한 근로시간 단축은 외주화·비정규직 증가 등 부작용을 늘려 오히려 고용불안을 키운다"고 주장했다.
애초 이론적으로도 '근로시간 단축→일자리 창출'이 맞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은 예견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거시경제 모형 분석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은 비용인상으로 연결돼 국내총생산(GDP)과 투자를 감소시키고, 결국 고용까지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까지 적용되지 않아 고용창출 효과가 미미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300인 이상 사업장 숫자는 전체의 0.2%, 종사자 수 또한 15.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0인~300인 사업장 또한 사업체 수는 1.8%, 종사자 수는 20.8%에 불과한 상황이다. 게다가 50~300인 사업장의 경우 법 시행은 지난해 1월부터였지만, 1년 계도기간이 주어졌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5~49인 사업장 숫자는 78만3072곳(36.5%)이고, 총종사자 수는 838만 7939명(44.8%)에 달한다. 이들에게 주 52시간이 도입돼야 일자리 창출 등 가시적인 효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혁신학회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주 52시간이 시행되면 신규고용 규모는 14만 8천 명~17만 7천 명이고, 이 중 중소기업이 12만 9천 명~15만 4천 명을 고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박용철 소장은 "주 52시간제를 대기업에서는 시행했지만 이제 막 시작이라 전체적인 효과나 성과를 아직까지 판단하거나 한 연구 결과는 없다"며 "근로시간을 줄이면 일부 일자리는 늘어날 수 있다. 꾸준한 물량이 상당히 많이 들어올 때 조달 가능한 계약직이나 용역직 등을 활용할 수 있고, 그래도 안 되면 신규 채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 창출을 정부가 '강제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노총은 과거 '단축입법 관련 입장'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연계하는 법·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연간 1800시간으로 줄여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가가 노동시간 단축 및 고용확대, 지원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공포·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단기적으로 탄력·유연 근로제를 허용해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근로시간 단축을 받아들이게끔 해야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로 연결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용춘 고용정책팀장은 "결국 중소기업들이 버텨야 하는데, 중소기업들이 주 52시간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 단기적으로 자금 지원, 외국인 근로자 우선 지원, 스마트공장 대책 등이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황경진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대기업만큼 인적자원관리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단순 재정 지원을 해주는 것도 좋지만, 컨설팅을 통해 특정 중소기업에 적합한 유연근로제가 있는지 등 현장에 맞게끔 설계해 주는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중소기업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까 그에 맞는 맞춤형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을 청년들이 '가고 싶은 회사'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빈 일자리는 전체 약 15만 4천 개가 존재한다. 이 중 300인 미만 사업장의 빈 일자리만 약 14만 6천 개다. 이처럼 중소기업에 많은 빈 일자리가 존재하지만 청년구직자들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2021 청년 일자리 인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구직 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으로 '일과 여가의 균형 보장'(27.9%), 즉 '워라밸 추구'가 가장 많았다. 먼저 중소기업에 근로시간 단축을 성공적으로 연착륙시켜야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