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두고, 최근 여러 전투의 전사(戰史)를 연구하며 이를 책으로 알리자는 움직임이 영미권에서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전투를 다룬 책 2권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판됐다.
◇ 패배했으되 '성공적인 철수' 장진호 전투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
하지만 그 시점에 중공군은 이미 국경을 넘어 북한 산악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라는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미 해병대 1사단은 10월 중순 원산에 상륙했다. 하지만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 일대를 향해 진격하던 이들은 중공군 3개 군단 12만명에 포위됐고,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인천상륙작전의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던 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장군의 지휘하에 해병대원들은 중공군에게 포위돼 고립된 상태에서 보급과 부상자 수송을 위해 하갈우리에 활주로를 건설했다. 후퇴 경로에 있는 마지막 관문인 황초령 수문교를 중공군이 파괴하자, 이를 복구한 끝에 흥남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한다.
논픽션 저술가인 저자 헴프턴 사이즈는 이를 다룬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Desperate Ground, 사지(死地))>에서 참혹했던 장진호 전투의 실상에 주목하되, 전쟁의 흐름만을 지루하게 기술하지 않는다.
대신 앳된 신병부터 사단장까지 다양한 계급의 해병대원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단장 스미스 장군의 이야기까지 담았다는 것이 번역자의 설명이다.
특히 북한 출신으로 서울에서 공부하던 이배석이라는 통역관의 이야기까지 다루어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투를 치르고 살아남았는지를 심층적으로 다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책을 번역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북한아카이브센터 박희성 연구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이 다른 양상으로 변모한 와중에 장진호 전투는 6.25 전쟁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됐다"며 "10만명에 이르는 함경도 주민들도 함께 남하, 후손 100만여명이 한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한미동맹의 근간이 되기도 한 전투가 바로 장진호"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진했던 부대들이 패배했다면 중공군의 우세로 전쟁이 흘러갔을 테지만 미 해병대는 조직적인 철수를 통해 전투력을 유지하고, 오히려 중공군에게 큰 타격을 주어 와해시켰다"며 "약간은 안일해졌던 미군 등 유엔군의 전투 의지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어, 오산-평택 선에서 중공군을 저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 연천 일대를 지켰지만 '잊힌 전투', '후크고지의 영웅들'
군사분계선을 끼고 서북쪽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걸쳐 있는 이 고지에서 미군과 영연방군은 1952년 10월부터 1953년 7월 휴전 직전까지 4차례에 걸쳐 중공군과 격전을 치렀다.
영국 육군은 각 연대마다 고유한 이름이 붙는다. 1952년 11월 초 벌어진 2차 후크고지 전투로 이 곳을 지켜낸 블랙워치 연대의 뒤를 이어 그달 중순 듀크 오브 웰링턴 연대가 투입된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낸 듀크 오브 웰링턴 연대는 1953년 5월 28일부터 50여시간 동안 처절한 참호전을 벌인 끝에 고지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임진강 북단의 연천군 장남면과 백학면, 미산면, 왕징면 일대는 군사분계선 남쪽에 남아 있다. 이를 다룬 <후크고지의 영웅들>은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케네스 켈드 등 영국군 장병 23명의 수기를 묶었다.
당시 17~2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이들 청년들이 삶과 죽음을 오고가는 전쟁터에서 겪어야 했던 긴장과 공포, 피로와 휴식 등의 일상이 담겨 있다. 말단 병부터 부사관,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여단장에 이르기까지 지휘관들의 솔선수범과 리더십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을 출판한 영국군의 고군분투를 확인할 수 있는 표석이 장남면 일대에 아직 없다는 점이라고 출판사 대표 길도형씨 등은 전한다. 인근에 작은 전적기념비라도 세우기 위해 전투를 널리 알리는 것이 이번 책의 출간 동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