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산 죽미령 고개는 미군의 피가 스민 곳이다. 지난 1950년 7월 5일, 아무것도 모른 채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은 죽미령에서 적군과 처음 맞닥뜨렸다.
비록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결과는 참담했지만, 죽미령전투는 반전의 계기가 됐다.
그렇게 한국과 미국의 혈맹이 시작된 곳. 곽상욱 오산시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죽미령 방문을 염원하는 이유다.
곽 시장은 지난 10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죽미령은 전쟁의 시작이자 평화의 시작을 상징하는 곳"이라며 "이곳이야말로 한미 동맹의 화려한 재출발을 알리는 최적지가 될 것"이라고 바이든 대통령 초청 의사를 밝혔다.
방한하는 미국 대통령이 어디를 가느냐는 중요 이슈다. 장소가 곧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에게 비무장지대(DMZ)는 필수 방한 코스였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부각하면서도 분단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어서다.
지미 카터는 DMZ 미군 부대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클린턴은 미국 대통령 최초로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방문했다. 부시 대통령은 도라산역을 찾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국립현충원을 찾은 바 있다.
그는 "네덜란드 한 메모리얼파크(추모공원)는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전사자 묘비를 만들어줬던 지역"이라며 "그곳에 미국 대통령이 방문해 양국 관계를 드높였다"고 사례를 들었다.
◇혈맹 싹 틔운 희생정신…평화공원서 동맹 재출발 도모
특히 곽 시장은 죽미령전투와 관련해 '미군의 희생정신'에 주목했다. 낯선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던진 희생이 있었기에 죽미령전투가 승리로 향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때 바이든 대통령과 한국전 참전 미군들에게 존경을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죽미령에서 그 추모의 의미를 되새기고 진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재임 기간 줄곧 죽미령을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곽 시장은 죽미령전투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을 준공했다. 공원에는 유엔군초전기념비를 비롯해 전시 상황을 재현한 각종 기념관과 조형물이 조성됐다.
다음은 곽 시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특별한 공원이라고 들었다.
= 죽미령평화공원이다. 앞에 스미스 글자가 붙는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연합군 이름으로 미군이 일본을 거쳐 급파 됐는데 그 부대 이름이 스미스였다. 540명의 부대원이 참전했다. 그 부대명을 따서 '스미스 죽미령평화공원'이라는 이름으로 1년 전 개장했다.
- 공원 건립 1주년, 감회는?
= 8년 전부터 이곳을 한미 우호 동맹과 남북 화해 협력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평화를 상징하는 공원으로 만들면서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완성한 지 벌써 1년이라니 감회가 남다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많은 내외빈을 모시고 화려하게 행사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이곳에서 만나길 간절히 희망한다. 한반도 평화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 장병들의 희생에 대해 자세를 낮춰 기리는 멋진 모습을 봤다. 워싱턴D.C.에서 그런 세리머니가 있었으면, 향후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는 이곳을 방문하는 게 아름다운 그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미스 부대원들이 피를 흘려가며 장렬히 전투에 임했고 또 180여 명이 희생된 곳이 바로 이 죽미령 고개다. 그런 희생이 우리 대한민국의 번영을 있게 했다는 역사적 배경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 한미 관계에 있어 특히 의미가 크기 때문일까?
= 한미 혈맹관계의 시작점이 바로 이 죽미령 고개였다고 본다. 양국의 우호 동맹을 자랑하고 있고, 지금도 너무나 중요한 외교관계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엔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위해 지원에 나선 것도 국민들에게 감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한미 관계에 있어 이곳 죽미령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과거 미국 대통령들은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에 방문해서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영혼을 기리기 위해 전투 의미가 깊은 굉장히 작은 마을에 가서 의식행사를 하는 모습들을 봤다. 예컨대 네덜란드의 한 메모리얼파크는 전쟁 당시 미군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그들이 전사했을 때 묘비를 만들어줬던 곳이다. 그곳에서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고 네덜란드와의 관계를 드높인 행사가 이뤄졌다. 그렇듯이 대한민국과 미국의 우호 동맹을 상징하는 세리머니를 반드시 이 죽미령공원에서 선보여야 한다.
= 오산 미군기지와 죽미령공원은 차로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이곳에 헬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뒀다. 청와대나 국회 등 서울 중심으로 이동하기 전 길목에 위치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만 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행사가 이뤄질 수 있다. 앞서 버락 오바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평택 오산공군기지나 캠프 험프리를 통해 입국했고 우리 대통령이 직접 영접한 사례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오산 공군기지나 캠프 험프리 입국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바이든 대통령을 맞아 어떤 이벤트가 가능할지?
= 유엔 지상군으로서 가장 먼저 달려와 준 미 스미스특수임무부대를 기리는 유엔군 초전기념비가 가장 상징성이 강하다. 먼저 이 초전기념비에 헌화를 해야 할 것이다. 70여 년 전 전쟁 상황을 잘 재현해 놓은 유엔군초전기념관, 스미스평화관 등 공원 안에 있는 여러 박물관은 물론 장병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한 기억의 숲, 또 죽미령전투의 의미를 형상화한 각종 조형물, 격전지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등을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환영의 의미로 대한민국 블랙이글스와 미 공군이 함께 펼치는 에어쇼를 기획할 수도 있겠다. 한미 동맹의 우호 관계를 자랑하는 큰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
= 미국 스미스부대가 첫 전투에 임했을 땐 북한군의 막대한 병력과 탱크를 앞세운 기세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곳에 진지를 구축해 전투를 벌였다. 수십 대의 소련제 탱크 앞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체포되는 등 18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로인해 지금까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투로, 가려진 전투로 여겼지만, 이 죽미령전투를 통해 북한군이 남하를 지체하게 됐고, 미군 등장에 놀란 김일성은 소련 스탈린에게 지원 요청까지 했다. 하지만 스탈린이 바로 응하지 않으면서 다시 북한군이 남하를 재시도 했을 때에는 이미 우리는 낙동강전선을 구축했다. 이어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서 인천으로 들어와 상륙작전을 펼치게 됐다. 죽미령전투는 반전의 기회를 전투였다. 이는 한미 우호 동맹의 큰 상징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자랑스러워하고 우리는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전투다.
- 지리적인 특성도 죽미령전투의 의미를 더한다던데…
= 죽미령고개부터 평택, 천안까지는 평야로 이어진다. 1번 국도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진격됐다면 빠른 시일 안에 대한민국 전체가 함락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 높지 않은 이 죽미령고개에서 전투가 벌어져 북한군이 남하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 오산시에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의 지혜로 나라를 지킨 독산산성이 있다. 바로 5분 거리에 이 죽미령이 있다. 한국전쟁 때는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미 있는 미군의 첫 전투가 있었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이곳에 시민들의 염원으로 평화공원을 만들었다. 교육도시 오산으로서 특히 전쟁과 관련한 역사 교육 현장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또 평화를 상징하는 공원으로서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이곳에 바이든 대통령이 와 준다면 세계적인 평화의 명소로도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