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인천의 한 세무서에서 상사로부터 추행을 당한 뒤, 오히려 직장 내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퇴직한 전직 여성 공무원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근 여성 부사관이 선임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이후 고통을 호소하다 숨진 채 발견된 사건 등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성범죄에 대한 우리사회의 미흡한 조치를 반성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성추행 피해' 전직 인천 모 세무서 공무원 숨진 채 발견
4일 인천 미추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전직 인천 모 세무서 공무원 30대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청소 관련 유튜버가 운영하는 청소업체 관계자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이 관계자는 평소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청소 의뢰를 받아 청소 현장에 대한 영상을 촬영하고 공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A씨를 알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유튜버는 새벽시간에 A씨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하고 다음 날 A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자 자택에 찾아가 숨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
◇ 법원 "피고인, 사건과 관련 없는 세무서 직원들의 탄원서 제출…추가 피해 입혀"
A씨는 2017년 9월 인천의 한 노래방에서 같은 부서 5급 공무원 50대 남성 B씨에게 추행 피해를 입은 뒤 직장을 그만뒀다. 당시 그는 B씨를 경찰에 고소한 뒤 직장 내 따돌림 피해를 입었고 우울증과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당시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상사 B씨를 입건했으며, 인천지법은 이듬해 11월 B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또 1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노래방에 동석하지 않은 직원을 포함해 세무서 직원들로부터 탄원서를 제출했다"며 "피해자가 장래에 근무할지도 모르는 직장 구성원으로부터 피고인에게 유리한 탄원서를 제출받음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게 하는 등 추가 피해를 입힌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세무당국은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B씨를 다른 세무서로 전보 발령했으며, 법원 판결이 나오자 정직 3개월 처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힘든 사람 도와주지 못할망정 왕따시키지 맙시다" 2차 피해 호소도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A씨 역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따돌림 피해를 호소했다.
A씨는 성추행 피해 신고 이후인 2017년 11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거 같습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을 통해 성추행 피해 당시 상황을 설명한 A씨는 이후 상사에게 사과를 요청했지만 기관장이 '증거가 있느냐'거나 '과장이 너를 아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등 내부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직속 상사인 가해자와 한 달 넘게 업무 분리 조치가 되지 않았으며, 감사실에 요청한 감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무상 병가나 기관 이동도 절차상 문제로 윗선에서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후 다시 글을 올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인데 조직을 시끄럽게 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있다"며 "상사가 처벌을 받는다 해도 조직 내부의 일을 외부에 알린 죄로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그렇듯 퇴사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그 여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떠들고 다니는데 확인 안 되고 사무실 출근도 안 하고 전과 16범이라네요. 과장님 좋은 분인데 맘고생으로 살이 쪽 빠졌대요'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 캡처를 올리며 자신에 대한 음해성 소문이 돌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당시 동료직원들이 "카톡도 무시하고 눈도 안 마주쳤다"며 "전과 16범이 어떻게 공무원이 되며 도벽은 또 뭐냐. 제가 아니라 바로 당신 일이 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힘든 사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왕따시키지 맙시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A씨는 1년 뒤인 2018년 9월 '성범죄 피해자로서 남기는 글'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마지막으로 이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지 않았다. 이후 A씨는 퇴사했다.
◇ 반복되는 조직내 성추행-회유와 은폐-2차 가해의 악순환
최근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숨진 채 발견된 공군 여부사관과 그를 둘러싼 조직의 회유와 은폐 등에 관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조직내 성추행- 회유와 은폐- 2차 가해'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우리사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조직 내에서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느꼈을 고립감과 절망감 등 피해자의 고통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A씨의 사망 소식을 전한 유튜버는 커뮤니티를 통해 "고인은 '나처럼 어려운 사람들과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이웃에게 써달라'며 기부를 하는 등 착하고 여린 사람이었다"며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공군 여부사관 사건을 언급하며 "번번이 거듭되는 조직내 성추행- 회유와 은폐- 2차 가해의 악순환이 이번 사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며 "여성중심사회가 돼 버렸다며 반격을 선동하는 주장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