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영호(신석호)는 아버지(김영호)가 불러서 한의원을 찾았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환자들 때문에 바빴고,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나이 든 남자배우(기주봉)와 간호사(예지원)를 만난다.
주원(박미소)은 독일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러 왔다. 비용을 줄이려고 어머니(서영화)의 옛 친구(김민희) 집에 머물게 됐다. 주원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옛 친구 집을 방문했고, 그는 옛 친구가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옛 친구는 말동무가 생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주원에게 갑자기 남자친구 영호가 찾아온다.
영호는 어머니(조윤희)가 갑자기 불러서 친구(하성국)와 함께 동해안의 횟집으로 찾아간다. 어머니는 한의원에서 봤던 나이 든 남자배우와 함께 있다. 어머니는 그 배우가 영호에게 조언을 해주길 바란다.
대신 간결하다. 간결하지만 결코 간단하지는 않다. 흑백이 만든 명료함 바깥 여백에 수많은 질문과 상상을 담아낸 덕이다.
영화에는 총 3개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는 각각 3개의 시작과 3개의 끝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는 3개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서 특별한 연결 지점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각 챕터 안에서도 많은 상황과 이야기는 생략된다.
대신 많은 것이 생략된 그 사이사이를 기다림과 머뭇거림으로 메운다. 기다림과 머뭇거림은 흡연이라는 행위로 자주 표현된다. 마치 담배를 피우는 순간, 그 짧으면 짧은 시간과 연기 속에 수많은 고민과 기다림, 상념을 담아 흩날려 보내려는 것처럼 영화 속 인물들도 그때마다 담배를 피운다.
관객도 영화 속 영호를 보며, 주원을 보며 그들의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다림과 머뭇거림을 함께한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맥락도 없고, 연관성도 없지만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기다림이기에, 어떤 시작이나 선택에 앞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머뭇거림이기에, 적어도 흡연자들에게는 담배 한 대의 시간이 갖는 의미를 알기에, 누군가를 마주 안는 시간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에 충분히 그들의 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세 번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담배를 태우고 포옹하며 서로 다른 기다림과 선택을 한다. 그렇게 주저하는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에 영화는 머뭇거림 없이 시원한 파도 사이로 몸과 마음을 내던지고 싶게 만든다.
마지막의 파도는 기다리고 머뭇거리던 인물들 안에 도사리고 있던, 차마 밖으로 모두 꺼낼 수 없었던 격정적인 마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혹은 어떤 선택을 앞둔 모든 마음 안에 웅크리고 있는 파고 말이다.
이러한 면에서 '인트로덕션'은 문학적으로 봤을 때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 보는 순간 있는 그대로 눈을 사로잡고 이후 행간을 떠올리며 그 사이사이를 상상하고 질문하며 더듬어가게 만든다. 그렇게 영화는 스크린에서 시작해 관객에게로 옮겨가 스크린 밖으로 자신이 가진 역할과 생동성을 확장해 나간다.
'인트로덕션'은 모든 새로움과 선택의 '도입부'이자 기다림 속에 있는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소개'이자, 관객에게는 영화 이후의 세계로 나아가는 '시작'을 제공하는 영화다. 또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세계에 있어서는 확장에 관한 '인트로덕션'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66분 상영, 5월 27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