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민 사건 나비효과…'실종사건' 여청과→형사과

한강 고 손정민씨 사건 등 '골든타임' 부재 영향
일선 형사들 "현장 목소리 듣지 않은 업무 개편"
경찰 "개선점 검토할 것"…7월부터 전국 시행

경찰이 한강에서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 씨 사건 이후,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실종 사건은 형사과가 전담하게 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경찰이 실종 사건 업무를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에서 형사과로 이관하는 계획을 검토 중인 가운데, 경찰 내부에선 인력문제 등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112상황실에 접수되는 실종 신고 중 범죄가 의심되는 사건은 곧바로 형사과가 수사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여청과)가 모든 실종 사건을 맡았다. 그러나 수사 초기 단순 실종 사건으로 여겼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대형 범죄로 번지는 문제들이 발생했다. 최근 한강에서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 씨 사건이나 인천 강화 농수로 시신 유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찰은 지난달 31일부터 2주간 전국 10개 관서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경기남부지역에서는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와 용인동부경찰서가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업무 조정이 확정되면 여청과는 치매노인 가출 신고나 극단적인 선택이 의심되는 사건만 다룬다. 이외 모든 실종 사건은 형사과가 맡게 된다.

◇'실종' 맡게 되는 형사들 "인력 증원 없이? 과부하 우려"

그러나 실종 업무를 넘겨받게 될 형사들 사이에선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형사 업무 특성상 살인뿐 아니라 폭력, 안전사고 등 대부분의 업무에 투입되는데 실종 업무까지 더해지면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

20년 경력의 경기지역 한 형사는 "형사들은 모든 사건 현장에 투입된다고 보면 되는데, 증원 없이 실종 업무만 떠넘기는 건 현장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실종업무에 신속하게 대처하겠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지휘부가 현장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범죄가 의심되는 실종 사건을 분별하는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초기 신고 내용만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형사는 "범죄가 의심된다고 해서 출동했더니 단순 가출이고, 단순 가출인 줄 알았다가 살인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현장은 누가 지휘하고 골든타임은 어떻게 지킬 건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변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는 여청과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이번 업무조정에 따라 최근 늘고 있는 데이트 폭력 사건이 형사과에서 여청과로 이전된다. 또 오는 10월부터 시행되는 스토킹 처벌법 관련 업무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여청과는 실종 업무를 담당할 인력을 형사과로 넘겨야 할 처지로, 인력 부족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경기지역 한 여청과 수사관은 "표면적으로는 실종 업무가 빠지니 수월해 보이지만, 여청과 수사팀 인원을 쪼개서 형사과에 넘겨야 한다"며 "여기에 데이트폭력 사건과 스토킹 사건도 맡아야 해 여청과도 인력난에 시달릴 게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6년간 오락가락 행정…경찰 "시범운영 통해 개선점 찾을 것"

당초 실종 수사는 형사들이 전담해왔다. 그러다 2015년 경찰 조직에 여청과가 신설되며 실종 업무도 넘어갔다.

하지만 2017년 여청과와 형사과가 함께 실종 사건을 맡게 된다. 중학생을 납치하고 살해한 이른바 '어금니 아빠'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당시 경찰은 피해 학생에 대한 실종 신고를 단순 가출로 판단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경찰은 여청과가 실종 업무를 맡되, 범죄 혐의가 의심될 경우 즉각 합동심의위원회(합심)를 열도록 했다. 합심에서 형사과의 수사 여부를 결정했다.

2019년에는 지금처럼 형사과가 실종 수사를 전담하기로 했다가 내부 반발에 무산되기도 했다.

현장에선 실종 업무 전체와 그에 걸맞은 인원까지 형사과로 이관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경찰관은 "형사 특성상 곧바로 수사 개시가 가능하고, 범죄 혐의도 파악이 빠르다"며 "형사가 실종 업무를 전담하되, 그에 맞는 인력이 증원되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도 이와 같은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경찰은 우선 시범운영을 통해 개선점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증원 문제는 담당 부서에서 업무량과 특성을 고려해 적정 인원을 분석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은 시범운영 기간이니 현재 인원에서 운영 가능한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여청과는 피해자 보호에 집중하기 때문에 형사과가 실종 수사를 도맡으면 사건 초기부터 즉각적인 대처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시범운영 중 문제점을 검토하고 개선책을 마련해 7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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