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90년대생 배우들 "지하철 1호선 롱런 비결이요?"

안경 역 이하정, 걸레 역 방진수, 곰보할매 역 김지윤
27년째 운행하는 학전 소극장 스테디셀러 뮤지컬
학전소극장서 6월 27일까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학전소극장에서 뮤지컬 '지하철1호선'에 출연중인 방진수, 김지윤, 이하정(왼쪽부터)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학전소극장(이하 학전·대표 김민기)의 대표 레퍼토리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지난 14일 운행을 재개했다. 2019년 공연한 이후 2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5월 14일, 폭염을 뚫고 첫 운행을 시작한 후 16시즌 동안 4천 회 이상 달리며 관객 71만 명을 실어날랐다. '학전 독수리 5형제'(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를 비롯 이 작품을 거쳐간 배우·연주자만 270여 명에 이른다. '아침이슬' 작곡가로 알려진 김민기 대표가 번안·연출했다.

'지하철 1호선'은 지하철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서울의 모습을 밀도있게 보여준다. 김 대표는 이 작품을 "서울의 풍속화"라고 표현했다. 최근 학전에서 90년대생 배우 이하정(30), 방진수(31), 김지윤(28)을 만났다.

세 배우는 이번 시즌 '지하철 1호선'에 처음 탑승했다. 배우 캐스팅 전, 김 대표는 그동안 학전 아동·청소년 레퍼토리 작품에 출연해온 배우들을 불러 모았고 배역 오디션을 통해 각자에게 캐릭터를 지정해줬다. 이하정은 목발을 짚고 다니는 가짜 운동권 대학생 '안경', 방진수는 '안경'을 사랑하는 청량리 588의 늙은 매춘부 '걸레', 김지윤은 서울역에서 '곰보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80대 욕쟁이 할머니 '곰보할매' 역을 맡았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하는 배우 방진수(걸레 역)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학전소극장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공연한 지 보름 정도 지났지만 세 배우는 여전히 "부담 반, 설렘 반"이라고 했다. "연기를 시작했던 고3(2008년) 때 생애 처음 뮤지컬을 봤어요. 그게 '지하철 1호선'이었죠. 그때 제가 받았던 에너지를 관객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안경'이 극중 드라마를 끌고 가는 인물이다보니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크지만 무대에 선다는 즐거움과 행복한 마음이 더 커요.(이하정)

"2002년에 '지하철 1호선' 공연을 처음 봤어요. 당시 배우로 활동하는 언니(방진의)가 '선녀' 역을 맡았었죠. 이번에 불러주셔서 너무 기뻤어요. 2019년 오디션에서는 탈락했었거든요. 막상 연습을 들어가니 만만치 않지만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공연하고 있어요. '지하철 1호선은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언니의 조언도 도움이 됐어요."(방진수)

"'지하철 1호선'은 배우를 꿈꿨던 학창시절, 대본으로 처음 접했어요. 배우 한 명이 한 작품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지금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해요. 친한 동료들이랑 공연을 함께 만들어가는 건 재밌지만 '곰보할매'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보니 아직 성에 차지 않네요."(김지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하는 배우 이하정(안경 역)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학전소극장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꿈꿔온 작품이지만 맡고 있는 배역은 연기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안경', '걸레', '곰보할매'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을까.

이하정은 "안경은 잘못하면 한 여성을 등쳐먹은 사기꾼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관객이 공감하게끔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방진수는 "에스메랄다(노트르담 드 파리), 카르멘(카르멘), 마리아(마리아) 캐릭터를 참고했다. 순수한 사랑과 아름다운 세상을 지키고 싶은 걸레의 마음이 느껴지면 좋겠다"고 했다. 김지윤은 "곰보할매는 거칠어 보이지만 속정 깊은 캐릭터다. 걸레가 죽은 뒤 안경이 '걸레 씨가 선녀 씨 잘 보살펴주라고 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곰보할매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배 곯지 말아야지'라고 말해요.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세 배우는 '지하철 1호선' 다음 시즌에서는 이번 시즌과 다른 배역으로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제가 까불까불한 캐릭터를 좋아해서요. '문디'나 '제비' 역을 해보고 싶어요."(이하정) "카리스마 느껴지는 '빨강바지' 역이요."(방진수) "'걸레' 역을 해보고 싶어요. 연습실에서 (방)진수 언니가 '울 때마저도 아름다운 너'를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요."(김지윤)

이번 시즌은 11명의 배우가 함께 한다. '선녀' 역의 김솔은을 제외하고 나머지 배우들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역할을 소화한다. 이하정과 김지윤은 10가지, 방진수는 9가지 배역을 맡고 있다. 배우들은 "무대 뒤는 전쟁터나 다름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방진수는 "옷을 재빨리 갈아입고 정확한 타이밍에 무대로 나갈 때 쾌감이 든다. 눈밝은 관객은 '아까 그 배우야' 알아채기도 한다"고 웃었다. 10대부터 80대까지 아우르는 김지윤은 "처음에는 '큰일 났다' 싶었는데 적응되니까 지금은 재밌다"고 했다.

90년대생인 세 배우에게 1998년 서울의 풍경은 낯설다. "당시 팍팍했던 사회 분위기나 정서는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588, AFKN, 빨강바지, 말죽거리 같은 작품 속 용어는 생경했죠."(방진수) 그래서 영화, 음악, 드라마 등을 보며 그때 그 시절을 공부했다. "연출부가 대본에 맞게 당시 사회적 배경을 간추려서 만들어준 스터디 가이드를 많이 참고했어요."(이하정). "김 대표님이 항상 대사는 노래처럼, 노래는 대사처럼 하라고 말씀하세요. 이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김지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하는 배우 김지윤(곰보할매 역)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학전소극장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지하철 1호선' 관객층은 머리 희끗희끗한 중장년층부터 20대까지 다양하다. 배우들에게 물었다. "'지하철 1호선'이 롱런하는 비결이 뭘까요?" "초연 이후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입시지옥, 교통지옥에 시달리고 있잖아요. 그런 모습에 공감하는 것 같아요"(이하정) "예나 지금이나 삶이 힘들어도 오늘을 살아가잖아요. 같은 연결고리가 있어서 사랑받는 것 같아요."(김지윤) "시대는 바뀌었지만 감성은 통하니까요."(방진수)

올해 30주년을 맞은 학전. 학전을 각각 "집과 학교 같은 곳", "내 청춘", "내 삶의 일부"라고 얘기하는 이하정, 방진수, 김지윤은 아직 공연을 보지 못한 관객에게 짧지만 굵은 한 마디를 남겼다. "꼭 보러오세요." 학전소극장에서 6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전소극장 건물 모습. 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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