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당국은 차량이 1층 외벽에 설치된 가스배관을 건드리면서 가스가 누출돼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큰 화재 피해로 이어진 데에는 '방치된 안전 사각지대'의 영향도 있었다.
◇가스유출 화재로 8명 사상
소방당국에 따르면 20일 오전 11시쯤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도로에서 5톤 택배차량이 1톤 트럭과 충돌한 뒤 인근 건물의 지상 1층으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가스가 유출되면서 화재가 발생했고, 불길은 5층 건물 끝까지 번졌다.
차량이 돌진한 건물 옆 1층짜리 가건물도 무너지면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던 여성과 행인 등 2명이 숨졌다. 5층 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 있던 4명과 택배차량·트럭 운전자 등 6명은 부상을 입어, 이 중 4명이 병원에 이송됐다.
가스 폭발의 위력으로 건물 맞은 편 가게들의 유리창이 깨지는 등 피해도 이어졌다.
이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로 된 지하 1층~지상 5층 건물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택배차량이 건물로 돌진할 때 1층 가스 배관을 건드려 가스가 누출됐고, 이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해당 건물은 6개월마다 실시되는 도시가스 정기 점검에서 '적합' 상태 판정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건물 1·4·5층은 지난달 9일과 17일 정기검사를 받았다.
이를 근거로 도시가스 관계자들은 취재진에게 "가스 배관 자체의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화재 피해가 커진 이유로 '안전 장치' 미비를 꼽았다.
이 건물은 1층 외벽에 가스 배관이 설치돼 있어 가스 누출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이를 방지할 보호대 등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숭실사이버대 이창우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가스배관이) 외부에 노출돼 차가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곳에 배관이 있다면, 안전 장치를 해놔야 한다"며 "사람들 무릎 높이, 차 범퍼 높이 이상으로 배관 보호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A도시가스 공급업체 측은 "불이 난 건물은 보도블록 위에 있어 배관에 보호대를 설치할 수 있는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보호관(슬리브)만 설치돼 있었고, 보호대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찾은 건물 앞 보도블록 바로 옆에는 2차선 도로가 있었다. 교통사고 등 외부에서 배관에 충격이 가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현행법은 외벽에 있는 가스 배관에 대한 보호 조치를 의무화하지 않았다. 도시가스사업법은 "도시가스 사업자는 도시가스 배관의 장기 사용 등으로 인한 가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가스배관 시설에 대한 건전성 관리 수행계획서를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산자부는 가스 배관의 안전관리에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확인하면, 도시가스 사업자에게 수행계획서 보강, 이행결과 재확인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우석대 공하성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좋은 소방시설을 갖추면 세금 감면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차량이 돌진하면 (이 건물과 같이) 슬리브 배관인 경우 쉽게 파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과수 부검을 통해 사고로 숨진 이들의 사인을 규명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