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정재계 인사들과 삼성전자 평택단지 건설현장을 방문해 K반도체 전략을 논의하는 날이었다. 청와대가 공들여 준비한 행사로 다소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이씨 빈소를 가야겠다"며 참모들에게 지시를 내려 당일에 조문 일정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을 만난 문 대통령은 "국가시설 안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사전에 안전관리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사후 조치들도 미흡한 점이 많았다"며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다음날 문 대통령은 김부겸 국무총리와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의 임명장을 수여한 자리에서도 "요즘 산재사고로 마음이 아프다"며 "고용부 등 모든 부처가 각별하게 관심을 갖고 산재사고를 줄이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고 이선호씨 빈소 방문과 TF 구성 지시는 산재 사고 예방과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에 대해 임기 말까지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내년 1월27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중대재해법의 세부 시행령을 두고 재계와 노동계가 팽팽하게 맞붙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힘을 실으면서 고용부를 중심으로 시행령 논의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행령 확정을 앞두고 현재 노사는 '경영 책임자의 범위'나 '중대재해의 범위' 등의 기본부터 세세한 부분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 시행령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현장에서 적용되는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계에서 이선호씨 추모 움직임이 커지면서 중대재해법 시행령 논의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이달 초만 해도 의대생 손정민씨 사망 사건에 비해 이씨의 죽음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온라인과 SNS를 중심으로 뒤늦게 추모 열기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이선호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산재 사고와 관련해 각 부처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지시를 내린 것은 중대재해법에 대해 청와대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신속하고 합리적인 시행령 제정으로 중대재해법이 안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