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처럼 천막으로 돌아간 목사와 교인들은 철거 잔해를 모아 교회를 다시 복원할 예정이다.
이날 오전 부산 서구 아미동 까치고개 언덕길에 자리 잡은 은천교회.
건물 전면이 공사장에서 볼 법한 가림막으로 둘러싸였고, 가림막 뒤로 삐죽 고개를 내민 첨탑만이 이곳이 교회 건물임을 알렸다.
자세히 보니 창문과 아치형 출입문 쪽 화강암 벽에는 숫자로 순서를 표시한 종이가 일일이 붙어 있었다.
은천교회 박현규 목사는 "건물을 복원할 때 다시 쓸 중요한 부분만 임시로 표시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목사에게 "그 많던 짐을 다 어디로 옮겼냐"고 묻자, 박 목사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교회 밖을 가리켰다.
예배당 밖에는 기다란 쇠파이프로 만든 뼈대에 청색 천막을 얹어 만든 '임시 예배당'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 중앙에는 교인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교회 살림살이를 모아 둔 박스가 둘러싸고 있었다.
박 목사는 "2주 전 교인들과 함께 여기로 짐을 옮겼는데, 당분간은 천막에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다"면서,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모이질 못하기 때문에 이 정도 공간이면 예배를 드리기엔 충분하다"며 웃었다.
감리교 교단은 이곳에서 피란민들에게 옷과 식품을 제공했고, 아이들은 주일학교에서 글자를 익혔다. 부모들은 교회에 모여 예배를 하면서 실향의 아픔을 달랬다.
천막생활 3년 만인 1955년 말 교회는 지금의 화강암 건물 모습을 갖췄다. 지난 2010년 한 교회 설립자 후손이 보내온 사진에는 당시 교회에 모인 주민들과 석조 건축물을 짓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박 목사는 부산시와 서구청을 수차례 찾아가 보존 필요성을 언급했고, 지역 문화재 전문가와 학계에서는 이 교회가 근대유산으로서 지닌 가치가 높다며 힘을 실었으나 구청의 철거 방침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
박 목사는 "복원비용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교인들과 함께 돌멩이를 하나하나 직접 날라서라도 건물을 복원하려 한다. 필요한 기계도 준비해 놓았다"며 "물론 지금 모습과 차이가 있겠지만, 복원한 건물도 50년, 100년 뒤에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을 부수는 단순 철거는 하루면 다 끝나겠지만, 일정을 2~3일로 잡고 세심하게 뜯어주면 철거 잔해를 분류해 다시 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구청이 이것만이라도 신경 써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덧붙였다.
서구청은 교회 측 요청을 받아들여 이날부터 일주일간 은천교회 철거 작업을 할 예정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통상 철거는 하루 이틀이면 모두 끝나지만, 잔해를 모아 복원한다는 교회 측을 배려해 기간을 일주일로 충분히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