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철거…70년 만에 천막으로 돌아간 '피란민 교회'

12일 철거 부산 아미동 은천교회, 1952년 전쟁 중 천막에서 시작
1955년 화강암으로 증축…피란민 아픔 보듬은 '교류의 장'
구청 도로 확장공사로 12일부터 철거…'천막 교회'로 돌아가
복원비용 턱없이 부족…목사·교인 "돌멩이 직접 날라 복원할 것"

12일 철거가 시작되는 부산 아미동 은천교회 모습. 박진홍 기자
6.25 전쟁 때 부산에 모인 피란민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부산 은천교회 건물이 12일 결국 철거된다.

70년 전처럼 천막으로 돌아간 목사와 교인들은 철거 잔해를 모아 교회를 다시 복원할 예정이다.

이날 오전 부산 서구 아미동 까치고개 언덕길에 자리 잡은 은천교회.


건물 전면이 공사장에서 볼 법한 가림막으로 둘러싸였고, 가림막 뒤로 삐죽 고개를 내민 첨탑만이 이곳이 교회 건물임을 알렸다.

철거 예정인 은천교회 외벽에 라벨이 붙은 모습. 박진홍 기자
좁은 사잇길을 지나 가림막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니 이 교회 특유의 회색빛 화강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창문과 아치형 출입문 쪽 화강암 벽에는 숫자로 순서를 표시한 종이가 일일이 붙어 있었다.

은천교회 박현규 목사는 "건물을 복원할 때 다시 쓸 중요한 부분만 임시로 표시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거 예정인 부산 은천교회 예배당 내부가 텅 빈 모습. 박진홍 기자
예배당 내부를 가득 메웠던 긴 나무 의자는 온데간데없고, 바닥에는 빈 포대 자루와 집기류가 널브러져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박 목사에게 "그 많던 짐을 다 어디로 옮겼냐"고 묻자, 박 목사는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교회 밖을 가리켰다.

예배당 밖에는 기다란 쇠파이프로 만든 뼈대에 청색 천막을 얹어 만든 '임시 예배당'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철거 예정인 부산 은천교회 인근에 마련된 임시 천막 예배당. 박진홍 기자
천막 바로 옆에서는 아미4행복주택 건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포크레인이 연신 흙을 퍼 나르는 탓에 흙먼지가 천막으로 계속 날아들었고, 기계가 내뿜는 소음으로 짧은 대화도 큰 소리로 주고받아야 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 중앙에는 교인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교회 살림살이를 모아 둔 박스가 둘러싸고 있었다.

박 목사는 "2주 전 교인들과 함께 여기로 짐을 옮겼는데, 당분간은 천막에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다"면서,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많이 모이질 못하기 때문에 이 정도 공간이면 예배를 드리기엔 충분하다"며 웃었다.

부산 은천교회 임시 천막 예배당 내부 모습. 박진홍 기자
은천교회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피란민들이 천막과 판자로 교회를 만들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이 공간은 피란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모임 장소로 쓰였다.

감리교 교단은 이곳에서 피란민들에게 옷과 식품을 제공했고, 아이들은 주일학교에서 글자를 익혔다. 부모들은 교회에 모여 예배를 하면서 실향의 아픔을 달랬다.

천막생활 3년 만인 1955년 말 교회는 지금의 화강암 건물 모습을 갖췄다. 지난 2010년 한 교회 설립자 후손이 보내온 사진에는 당시 교회에 모인 주민들과 석조 건축물을 짓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50년대 은천교회를 지금의 석조 건물로 건립중인 모습. 부산 은천교회 제공
부산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1950년대 석조 건축물이던 이 교회는 지난 2014년 인근에 아미4행복주택 공사가 결정되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서구청이 행복주택 진입로를 확장하기 위해 교회부지 절반을 수용하면서 철거가 결정됐다.

박 목사는 부산시와 서구청을 수차례 찾아가 보존 필요성을 언급했고, 지역 문화재 전문가와 학계에서는 이 교회가 근대유산으로서 지닌 가치가 높다며 힘을 실었으나 구청의 철거 방침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

철거 예정인 부산 은천교회 전경. 박진홍 기자
교회 측은 구청에서 받은 보상금 4억5천만원을 들여 현재 교회가 있는 자리 바로 옆에 건물을 복원한다는 계획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있는 건물을 모두 복원하려면 최소 8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복원비용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교인들과 함께 돌멩이를 하나하나 직접 날라서라도 건물을 복원하려 한다. 필요한 기계도 준비해 놓았다"며 "물론 지금 모습과 차이가 있겠지만, 복원한 건물도 50년, 100년 뒤에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을 부수는 단순 철거는 하루면 다 끝나겠지만, 일정을 2~3일로 잡고 세심하게 뜯어주면 철거 잔해를 분류해 다시 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구청이 이것만이라도 신경 써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덧붙였다.

서구청은 교회 측 요청을 받아들여 이날부터 일주일간 은천교회 철거 작업을 할 예정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통상 철거는 하루 이틀이면 모두 끝나지만, 잔해를 모아 복원한다는 교회 측을 배려해 기간을 일주일로 충분히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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