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구멍 숭숭…출범되고서야 세부 이첩안 조정 중
공수처가 수사기관으로서 연착륙 하기도 전에 검찰과의 갈등이 먼저 부각된 배경에는 공수처법의 모호한 규정이 손꼽힌다. 공수처법에는 공수처가 검사와 판사 등 고위공직자의 혐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첩한 사건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당장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현직검사 연루 사건에서 검찰과 공수처는 맞붙었다. 공수처는 검사, 판사 등에 대한 기소권이 공수처에 있다는 규정에 근거해 검사 사건을 검찰로 이첩하면서 수사 후에는 공수처가 기소하겠으니 사건을 송치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건이 이첩된 이상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
공수처법이 성기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수사기관에 관한 법을 만드는 것인데도 사건을 어느 기관에서 어떻게 옮기는지의 기준이 되는 이첩 세부안 마련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평가다. 수사기관 사이의 사건 이첩 조항이 조율되지 않으면 사건 이첩 시기와 수사 주체 등을 두고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게 뻔한데도 공수처가 출범한 뒤에야 이같은 논의가 시작됐다.
공수처는 출범 두 달이 되어서야 검경과 3자 협의체 회의를 열어 '검사 사건을 검찰에 이첩할 경우 공수처가 공소 제기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자체 사건 사무규칙을 전달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반대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여당이 너무 급하게 공수처법을 만들었다"면서 "공수처법은 마치 꽃꽂이할 때 쓰는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고 꼬집었다.
결국 공수처는 출범 100일까지도 이첩 세부안이 포함된 사건 사무규칙조차 만들지 못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다른 수사기관들의 의견을 받았고 이에 대해 재협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공수처 입장을 정리하는대로 사건 사무규칙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의 수사와 공소 제기 간 범위는 다르다. 수사 범위는 넓지만 공수처에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검사, 판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로 한정적"이라면서 "공수처가 검찰과 기소권을 가지고 다투기보다는 수사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의 핵심인 인력 상황도 수사기관으로서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공수처법상 수사 검사의 임기는 3년으로 3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다고 제한하고 있다. 최장 9년에 불과한 임시직에 유능한 수사 인력들이 지원하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어서다.
검사와 수사관 모두 '정원 미달' 상태로 수사 체제로 전환됐고, 대변인직도 공모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재부에서 파견온 정책기획담당관이 겸임을 하게 됐다. 언론에 대응을 제대로 대응을 못하면서 스텝이 꼬인 공수처는 수사 시작도 전에 보도자료 허위 해명으로 검찰에 소환 통보를 받게 되는 처지가 됐다.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이성윤 지검장의 황제 조사가 대표적이다. 경험 부족이 자초한 일이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공수처가 조금이라도 빨리 자리를 잡으려면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기 보다는 협력 체제를 유지하며 기본 체제부터 갖추는게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는 오히려 제도 정비 등을 통해 국민 신뢰를 확보 하는 방안으로 가는 게 우선"이라면서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도 있지만 여기에만 연연해서는 안된다. 수사 대상을 검찰로만 한정 지으면 형해화(형식만 있고 가치나 의미가 없게 됨) 될 수 있는 부분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승재현 연구위원도 "사건의 크고 작음에 따라 1호 수사를 가릴 것이 아니라, 응급실에 급한 사람이 먼저이듯 사건도 급한 순서대로 해야한다"면서 "모르는 것에 배우면 되지만 그것이 반복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