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재단 광주비엔날레 작품 외압에 과거 외압까지 '재조명'

박정희재단, 이상호 작가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전시 중단 '압력'
지난 2014년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전시 불허 사태 연상
'세월오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해 '논란'
지역 미술계 "첨예한 주제를 다루는 비엔날레 이런 이슈 나쁘지 않아"

이상호 작가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92명이 포승줄과 수갑을 찬 모습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김한영 기자
최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친일 인사들을 소재로 다룬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작품에 대해 전시 중단을 요구한 가운데 지난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해 전시 파행 사태를 빚었던 과거 외압 사례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27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하 박정희재단)에 따르면 박정희재단은 지난 14일 우편물로 입장문을 보내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일제를 빛낸 사람들' 작품은 악의적 정치 선전물으로 전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정희재단이 문제로 삼은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이상호 작가가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와 협업해 그린 작품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의 입장문. 독자 제공
이상호 작가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친일 경찰 노덕술과 만주환상곡을 애국가로 바꾼 안익태 등 친일·반민족 행위자 92명이 포승줄과 수갑을 찬 모습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이상호 작가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미국 뉴욕타임스 3월 29일자 1면에 실리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 26일 자 지면에는 이상호 작가와 일제를 빛낸 사람들 작품에 대한 글을 싣기도 하는 등 외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박정희재단은 이상호 작가의 작품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산업화의 주역들을 왜곡하고 폄훼했다며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주시를 비롯해 공식 후원사 20여 곳에도 우편물을 보내 전시를 중단하도록 외압을 가했다.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돼 있다.
박정희재단의 이상호 작가 작품에 대한 외압이 드러나면서 지난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해 전시 파행 사태를 빚었던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이 7년여 만에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에서 발생한 표현의 자유 침해와 사전 검열 논란은 당시 광주 예술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를 5·18과 연계해 묘사한 작품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허수아비로 묘사했다.

홍 화백의 세월오월은 지난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광주시가 외압에 굴복하면서 전시를 불허해 박 대통령 얼굴을 닭머리 형상으로 교체까지 했으나 끝내 전시가 무산됐다.

이에 지역 미술단체들이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전 검열을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광주비엔날레 이용우 대표이사가 사임했다.

이후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전 차관이 세월오월 전시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역 미술인들은 세월오월 전시 외압 사태를 겪은 지 7년이나 지났지만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환경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시대가 흘러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예술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것과 새로운 영역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한편에서는 첨예한 주제를 다루는 비엔날레에서 이러한 논쟁이 불거지는 것은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광주 문화대안공간 '메이홀' 전시 큐레이터 주홍 작가는 "비엔날레는 가장 첨예한 주제를 다루는 실험의 장이다"며 "이런 이슈가 발생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기 아니고 우리 사회가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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