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안팎에서는 통신사들이 '탈(脫)통신' 행보를 노골화하는 동안, 5G 기지국 투자 등 본업인 통신서비스는 뒷전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KT, 10기가 인터넷 100메가 속도 논란…대표까지 사과했지만 누리꾼 '부글부글'
발단은 지난 17일 IT 유명 유튜버 잇섭이 자신이 사용 중인 KT 10기가 인터넷 서비스가 실제론 100Mbps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영상을 올리면서부터다. 잇섭은 "자신이 용량을 초과해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속도가 100분의1 수준에 머물렀다"며 "KT가 속도를 고의로 저하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10기가 인터넷은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는 유선 인터넷 중에선 가장 빠른 속도다. 요금이 월 8만 8천 원에 달한다. 월 2만 2천 원인 100Mbps 인터넷보다 4배나 비싸다. 특히 유선 인터넷은 보통 이동통신과 결합상품 가족 할인 등으로 무료에 가깝게 쓰는 집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요금으로 평가된다.
구현모 KT 대표도 21일 월드IT쇼 개막식에서 "조사해보니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며 "고객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응대 과정에서 철저히 파악했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잘못됐다"라며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10기가 인터넷은 현 정부가 지난 201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10기가든 100메가든 일반 사람들 입장에선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1기가는 영화 한 편 또는 음악 1천곡을 35초 만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속도라고 알려져 있다. 10기가 인터넷이라면 (최고 속도 기준) 이보다 10배 빨라야 하는 셈이다.
이용자들은 "속도 저하는 예전부터 있었던 공공연한 문제였다", "터질 게 터졌다" 등의 반응이다. 실제 유튜브상에는 이 유튜버가 제기하기 3~4년 전부터 인터넷 속도 문제를 언급하는 영상이 십여개 정도 올라와 있었다. 이에 누리꾼들은 "160만 유튜버나 되니까 이 정도 파급력이 있는 것"이라거나 "일반인들은 제기해도 진상 고객의 '악성 민원'으로밖에 처리되지 않았을 것"이란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 "속도 저하, 고객이 입증하라고?"…과기부 차관 "KT 기본부터 지켜라"
KT의 대응 과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인터넷 속도 품질에 대해 고객센터에 문의하자 "고객이 30분간 5회 이상 속도를 측정하고, 측정 횟수의 60% 이상이 최저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면서 "속도가 느려지게 되면 전화를 달라"는 일차원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처럼 '고객이 속도 저하 문제를 직접 입증하라'는 응대에 대해 해당 영상의 시청자들은 물론 누리꾼들은 분노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는 현재 국내 통신사들의 고객 서비스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불한 요금만큼 정당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는데, 이걸 고객이 증명해야만 약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조경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23일 서울 KT 아현국사를 방문해 통신재난 방지대책 추진현황을 점검하면서 "KT는 더욱 긴장해서 통신재난 안전관리뿐만 아니라 서비스 품질관리 등 기본부터 튼튼히 해야 한다"며 문책성 발언을 했다.
앞서 KT 아현국사 지하 통신구에서 2018년 11월 24일 화재가 발생해 서대문·마포구 일대 통신이 마비된 바 있다. 게다가 잇섭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난 것은 물론 잇섭과 같은 피해를 본 사례가 추가로 23건 있는 것으로 발견됐다. 더 나아가 사태는 이통 3사 전체 인터넷 상품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인터넷 품질은 통신사 전반에 걸쳐 꾸준하게 불만이 제기됐던 사항이다. 특히, 인터넷 속도 요금제 광고에서 속도 옆에 '최대'라는 글씨가 작게 쓰여 있는 것도 소비자 기만행위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이는 해당 요금제가 최대로 그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얘기지 소비자가 항상 그 속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과장 광고를 방지하기 위해 2002년 8월 초고속 인터넷 품질보장제도(SLA)가 도입돼 공지된 속도의 30~50% 이상 최저 보장 속도를 약관에 규정하도록 했다"면서 "그러나 이번 사태와 같이 속도가 저하되면 고객이 통신사에 저하된 속도를 입증해야 개선해야 하는 구조는 이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한다"고 말했다.
초고속 인터넷 속도 논란의 불씨를 키운 것은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5G 통신의 품질 문제다. 롱텀에볼루션(LTE)보다 매월 비싼 요금제를 내면서도, 만족스러운 5G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통신 3사는 5G 속도가 4세대(LTE)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고 주장했다. 5G 상용화 당시 통신사들은 5G 속도가 최대 20Gbps를 구현한다고 홍보했으나, 실제로는 476.5Mbps(지난해 말 기준, 루트메트릭스), 354.4Mbps(2021년 2월, 오픈시그널)로 다운로드 속도가 측정됐다. 이는 약속 속도의 50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이달 '5G 상용화 2년'을 맞으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서비스 초기에는 불편을 참고 인내했던 소비자들도 2년이 지날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는 5G 품질 문제를 더는 참아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5G 단체 소송전으로까지 비화됐다. 지난 15일 접수된 첫 소송에 SK텔레콤 238명, KT 117명, LG유플러스 151명이 참여했다. 이는 극히 일부다. 다음 달 소장 접수가 예고된 또 다른 법무법인의 소송에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만 1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통신3사, 너도나도 '탈통신' 외치더니…미래 먹거리 찾느라 본업은 뒷전
일각에서는 통신사들의 잇따른 '탈통신' 열풍에 신사업을 펼치느라 본질은 놓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KT는 통신사에서 벗어나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의 '디지코(Digico)'를 표방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최근 지배구조개편을 통해 통신회사와 반도체를 축으로 하는 비(非)통신 회사로 쪼갰다. 주력 사업인 유무선 통신회사와 SK하이닉스 등 신사업을 이끄는 중간 지주회사로 기업을 분할해 주주가치와 기업가치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겠다며 '텔레콤'을 떼는 사명변경도 검토 중이다.
LG유플러스 역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고객 간 거래(B2C) 영역에서는 광고·데이터·구독형 서비스 등을, 기업 간 거래(B2B) 영역은 스마트팩토리·스마트모빌리티·뉴딜사업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분주하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재택근무와 수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확대로 트래픽이 폭증하고 있어 통신사의 장비 증설과 네트워크 투자는 필연적인데 이처럼 통신사들이 본업을 뒷전으로 하는 품질 논란이 불거진 만큼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5G 기지국 설치 미비로 5G 서비스 자체가 안 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도심 등 특정 장소에서는 잘 터지다가도 대중교통, 실내, 외곽 등으로 가면 LTE로 수시로 바뀐다는 것이다.
통신 3사는 "기지국 설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집(5G 기지국)을 지으면서 월세(5G 요금) 받는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5G 가입자는 지난 2월 기준 1366만 명을 기록하며, 상용화 2년 만에 대중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통신 3사의 영업이익은 올 1분기 1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