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소송이었지만 타국의 행위를 국내 법원이 재판할 수 있는지를 놓고 두 재판부의 해석이 엇갈렸다. 이날 판결에 대해서 피해자 측이 항소를 예고한 만큼 최종 결론은 상급심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각하한다며 소송 비용 또한, 원고 측에서 부담하라고 밝혔다.
이러한 판결의 주된 근거는 모든 주권국가가 평등하다는 전제에 따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 자국의 국내법을 적용해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국가면제' 원칙이 됐다. 일본 측 또한, 소송이 제기된 후 이 원칙을 내세우며 재판 참석을 거부했다.
'위안부' 피해자 측은 국제관습법인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이 사건 재판에서 변론해왔다. '위안부' 사건은 반인도적인 행위로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피해자들에 대한 재판권이 국내 법원에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재판부는 '위안부' 사건은 국제 규범을 어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국제관습법인 국가면제 원칙보다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가 우선한다며 재판권을 인정했고 일본의 성범죄 등 불법행위가 인정되는 만큼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일본, 미국에서 낸 민사소송 등 다른 배상 및 사과의 길이 막힌 상황에서 낸 최종적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관습적으로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재판권이 없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소송에서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일본의 '위안부' 차출 행위는 국내 영토에서 이뤄졌으며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를 갖게 하는 등은 국제 인권법 등에 위반한 행위라며 기초적인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인정했다.
다만 그렇다고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그 근거로는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례를 들며 "영토 내의 무력 분쟁 과정에서 외국의 군대에 의해 이뤄진 행위에 대해 국가 면제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소송이 피해자들의 마지막 권리를 찾기 위한 수단이라는 주장도 사실상 배척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일본과 합의하고 후속조치로 나온 화해치유재단 등을 통해 현금 지원사업을 통해 일정 부분 충족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일본) 책임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고 최종 합의안에 관해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아니하는 등 일부 문제점이 있다"면서도 "위 합의가 외교적 보호권 행사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대한민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한국과 일본 정부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대내외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히며 피해자에 대한 최종 구제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명시했다.
이날 판결로 일본을 대상으로 한 '위안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두고 같은 법원에서 서로 다른 두 결론이 나오게 됐다. 앞서 1월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에 대해서 원고는 물론 재판 참석을 거부한 피고인 일본도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