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문틈에 꽂혀 있는 오래된 각종 고지서와 '0'을 가리킨 채 깜빡이는 전기계량기 숫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음을 쉽게 짐작케 했다.
마을 원주민들은 이곳을 '유령주택'이라고 불렀다. 한 주민은 "군공항 온다는 소문이 돌더니 작은 집들이 늘었다"며 "여태 사람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3일 경기도 화성시와 수원시 등에 따르면 이런 밀집주택은 화성 화옹지구가 국방부의 수원 군공항 이전 예비후보지로 지정된 지난 2017년 이후, 후보지와 인접한 우정읍 일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들어섰다.
예비후보지 지정 이후 그해 10월 수원시는 소음예측지도를 만들어 90웨클(항공기 소음 단위) 이상은 토지와 건물을 매입·보상하는 등의 보상안을 마련했다.
유령주택들은 이 구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실제로 2018년 이후 후보지 인접지역인 우정읍 내 화수리와 원안리, 호곡리의 주택 개발허가 건수는 158건으로 지어진 집은 140여 채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주거여건이 열악한 협소 주택을 시세보다 비싸게 거래한 것 자체를 군공항 이전계획을 염두에 둔 투기 행위로 판단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와 관련해 투기수단으로 지목된 이른바 '벌집주택'처럼, 군공항 이전에 따른 부동산 수용 보상금을 노렸다는 지적이다.
투기의 흔적은 또 있다. 해당 주택들에 대한 등기부등본 열람 결과 소유주가 서울과 충북 청주, 성남, 시흥, 인천, 안산 등 외지인인 경우가 상당수 확인됐다.
외지인이 실거주가 아닌 보상받을 목적으로 사들인 전형적인 투기 행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애초부터 '떴다방'으로 불리는 기획부동산이 개입돼 투기꾼들을 모아 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우정읍의 한 공인중개사는 "군공항 이슈가 터질 때마다 문의가 급증했다"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부동산 사무소를 차려놓고 농지 한가운데 집을 다닥다닥 지어 분양한 것"이라고 말했다.
◇'투기판' 우려 고조…이전사업 답보에 '손실' 가능성도
군공항 예비후보지 발표 이후 이같은 밀집주택 투기 행태는 물론, 화성 지역 전체적으로도 부동산 시장이 들썩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정보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화성 내 토지거래는 군공항 예비후보지가 발표된 2017년 8만 5천여 필지로 4만여 필지 안팎이던 기존 거래량의 두 배 가까이 늘더니 이듬해 9만 8천여 필지로 최고점을 찍었다.
특히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군공항 예비후보지와 접해 있는 우정읍 일대에서 부동산 거래가 꾸준히 증가했다. 거래는 주로 시세가 낮은 임야나 밭 등지에서 이뤄졌다.
그 중엔 1~5㎡의 아주 소규모 땅까지 매입한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알박기'가 의심되는 정황이다.
하지만 수원 군공항 이전은 화성시의 유치 신청 없인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화성시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계획 추진이 지지부진하자 최근에는 일부 분양가보다 싼 값에 매물을 내놓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한 주택 소유주는 "주택 시행하고 분양했던 사업자와는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라며 "집 시설도 엉망이고 해서 내놓고 싶지만 팔릴지도 모르겠고 손해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투기세력들에 대한 법적 제재 방법이 없다는 것. 이런 가운데 화성시는 실거주자가 아니면 주택이 아닌 별장 등으로 분류해 세금을 더 높게 책정하는 등 행정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군공항 이전이 확정된 것처럼 과장해 부동산 투기를 유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주민 홍보·계도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화성시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지분을 나눠 재산권을 행사하는 형태라 단속 근거는 없다"면서도 "군공항 이전은 화성시가 강하게 반대해 법적으로 추진이 불가한 계획인데 마치 이전이 확정된 것처럼 허위광고를 해 투기를 조장하는 행위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국가사업 독립위원회 운영, 투기 법적 제재 시급"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주도 사업과 관련해 투기가 횡행하는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투기 근절을 위해 실거주 목적이 아닌 부동산 거래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김성달 국장은 "군공항 이전이 확정된 게 아니라도 예비후보지 확정에 대한 기대심리는 충분히 작용했을 것"이라며 "대규모 투기를 해놓고 향후 군공항 이전을 시행하도록 압력 행사나 로비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국장은 "이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국가사업의 객관적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는 독립된 상설 전문위원회를 운영하고, 특정 시점 투기성 거래를 제한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