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미국 내에서도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군비통제(arms control) 방식의 단계적 비핵화가 본격 거론되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북, ICBM 쏘면서 전술무기 막는 것은 '강도적 논리'…'이중잣대' 비판
그는 "북과 남의 같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한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놓고 저들이 한 것은 조선반도 평화와 대화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한 것은 남녘동포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대화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니 그 철면피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식 '내로남불' 비판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논리는 28일 조철수 외무성 국장과 27일 리병철 노동당 비서의 담화에서도 일관된 핵심이다.
리 비서는 "미국은 핵전략 자산들을 때 없이 조선반도에 들이밀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려도 되지만 교전 상대인 우리는 전술무기 시험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강도적 논리"라고 항변했다.
조 국장은 미국의 시리아 공습과 영국의 핵탄두 증강, 프랑스의 신형 ICBM 시험 등을 거론하며 "이러한 행위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문제시되거나 취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극도의 편견'과 '이중기준'을 지적했고 공정성과 객관성, 형평성의 원칙을 강조했다.
◇미국과 대등한 핵군축협상 속내 작용…향후 도발 명분쌓기 성격도
리병철 담화는 "우리는 결코 누구의 관심을 끌거나 정책에 영향을 주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계속해서 가장 철저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키워나갈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
올초 8차 당 대회에서 밝힌 핵잠수함, 다탄두 개별유도기술, 극초음속 미사일, 군사정찰위성 등의 휘황한 국방과학정책을 재확인한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당시 밝힌 무기체계가 광범위함으로 향후 다양한 무력시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동시에 대남공세를 강화함으로써 필요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미국을 압박하는 전술도 예고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이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신무기 '카탈로그'까지 내비치며 압박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핵군축 협상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계속 단계적 해법을 거부하고 선(先)비핵화 등의 '강도적 논리'만 고수한다면, 핵능력을 더욱 끌어올려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선택을 묻고있는 셈이다.
◇美 전문가들도 '군비통제' 본격 거론…바이든 대북정책 주목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25일 포린어페어스 공동 기고문에서 "완전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지만, 중간단계로서 북한 위협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실적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비핵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능력을 강화하고 오히려 고도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트럼프식 빅딜 담판이나 전략적 인내 회귀, 예방적 선제공격 등 과거의 방법은 유효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도 최근 38노스 기고문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를 단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접근법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가 30일 보도했다.
VOA는 또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바이든 정부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를 고수하며 북한이 핵무기를 모두 포기한 다음에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한다면 그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새 대북정책은 이번 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정부는 단계적 접근도 비핵화 방안의 하나로 진지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단계적 접근은 까다로운 검증·사찰을 전제조건으로 할 수밖에 없어 북한의 단계적 해법과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용인할 것이란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의 우려를 씻어내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