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이상주)는 살인·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를 받는 양모 장모씨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아동유기·방임) 등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씨에 관한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는 정인이를 부검한 부검의 A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A씨는 "(정인이는) 지금까지 제가 봤던 다른 학대 피해자 중 제일 심한 손상을 보였다"며 "저랑 같이 다른 의사 3명이 봤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손상 정도가) 아주 심해서 학대냐 아니냐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얼굴뿐만 아니라 몸통과 팔, 다리 곳곳에 맨눈으로 보기에도 심한 상처가 많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부검 과정에서 학대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상처들도 다수 발견됐다.
이어 "갈비뼈 뒤쪽에서 치유 중인 골절을 봤다"며 "뼈가 불룩 튀어 올라와 있는데 부러진 다음에 시간이 진행되면서 뼈가 붙은 상태였다. 위쪽은 확실하게 안 붙은 상태였다. 갈비뼈 골절은 사고로는 애기들한테 안 생기기 때문에 다발성 골절이 있으면 학대에 의한 손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사망 당일 췌장 등이 절단될 정도의 손상, 즉 강한 '외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입증이었다. 피고인 측은 늑골 골절 등 상습 아동학대 부분은 인정했으나, 사망 당일 장기가 끊어질 정도의 강한 외력은 행사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부인해왔다.
하지만 A씨는 췌장 등 복부 손상이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보이지만, 직접적인 사인이 되는 큰 손상은 사망 당일 생겼을 것이라고 봤다.
A씨는 "췌장 한 쪽은 색깔이 좀 변했는데, 사망 직전보다 며칠 정도 전에 손상을 입은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며 "예전에 받은 손상이 사망 직전에 다시 더 크게 손상 받았을 수도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장간막 손상된 부분은 찢어진 곳에 출혈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 정도 찢어진 상태로 계속 살지는 못했을 것 같다"며 "사망 전에도 찢어졌을 수 있지만 (그 상태로는 생존이 어렵기 때문에) 아주 크게 찢어진 손상들은 사망 당일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같은 상처들은 둔력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 차례 반복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양모 장씨가 이 같은 상처들이 정인이를 들고 있다가 떨어트려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그런 일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다른 손상들이 많이 동반돼 있고 복부에 최소 2회 이상의 손상이 추정되는 등 상처가 사고로 생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A씨는 심폐 소생술을 하면서 이 같은 손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양모 측 주장에 대해서도 "심폐소생술(CPR) 자체가 소아에게 저런 손상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다만 "CPR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잘못된 방법으로 시행할 경우에는 복부에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정인이 부검 사진이 증거로 제시됐다. 사진이 모니터에 뜨자 방청객들은 절규를 하거나 눈물을 보였다. 양모 장씨는 지금껏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재판을 받아 온 것과는 다르게 이날은 머리를 묶은 상태로 출석했다. 장씨는 주로 정면만 쳐다 본 채 재판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