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유족들 "30년 넘게 진상규명 안돼…진실 밝혀달라"

10일 故장준하 아들 장호권씨 등…진실화해위에 18건 신청
"1기 당시 조사 제대로 안 이뤄져…범정부 차원 협조 있어야"

10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제기된 의문사 피해자들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한 뒤 해결되지 않은 의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진실화해위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경찰, 국군기무사령부 등 권력기관에 의한 피살 의혹이 제기된 '의문사' 피해 유족들이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대해 "이번만큼은 제대로 조사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의문사 사건 유족들과 추모사업회 등이 모여 결성한 '의문사 진상규명 30+'은 10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문사의 진실규명 없이는 화해도, 과거사 정리도 없다.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전심전력으로 조사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의문사 총 18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다만, 이 중 전두환 정권 당시 강제징집된 '녹화·선도 공작' 피해자 8명(이진래·정성희·이윤성·김두황·한영현·한희철·김용권·최우혁)에 대해서는 지난달 24일 유족들이 별도로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날 접수된 사건에는 일제 강점기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 해방 이후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죽음도 포함돼 있다. 고인은 유신헌법의 개헌을 주장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지난 1974년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이듬해 8월 17일 경기도 포천시 소재 약사봉 등반 중 추락사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장 선생은 사망 뒤 주변인들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감시, 타살 의혹을 제기한 동아일보 기자의 구속 등으로 피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국가정보원 등 관련기관의 자료제출 거부 등을 이유로 '조사 불능' 결정을 내렸고 10년 전 활동했던 1기 진실화해위는 실제적으로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밖에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으로 지난 1991년 입원 중인 병원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故박창수씨, 강제철거 과정에서 실종된 후 숨진 장애인 노점상 故이덕인씨 등도 조사 요청대상에 들어갔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제기된 의문사 피해자들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한 뒤 해결되지 않은 의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진실화해위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 선생의 맏아들인 호권씨는 "1·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기 진실화해위가 모두 진상규명에 실패해 네 번째 신청서를 들고 여기에 모여 있다. 이번만은 진실규명 불능이라 결정하지 말아달라"며 "우리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믿는다. 싸워서라도 자료를 찾아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국가기구 조사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지난 30여 년 동안 관련법을 만들고 국가기구를 설립하는 데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투쟁해왔다. 그러나 국가기구는 번번이 유족들에게 실망과 좌절만을 안겨줬다"며 "현재의 권력기관들이 비협조적이기 때문에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것은 진실화해위와 유족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조사권한의 한계, 권력기관의 비협조 등을 이유로 더는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정원은 피해를 특정해 자료를 요청한 신청인에게 자료를 공개하는 등 문서고를 개방하고 있다. 이는 의문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며 "과거 공안기관의 '공작'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진실화해위의 적극적 노력과 범정부 차원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전력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전문성을 갖춘 충분한 인력의 배치 및 신속한 조사 개시 △책임자와 가해자, 목격자와 제보자들이 양심선언을 할 수 있는 창의적 방안 마련 △유족과 추모단체들을 상대로 한 정례적 사건설명회 개최 및 피해자 참여 시스템 마련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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