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금융 경찰'이라고 불리우는 금감원이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권의 각종 비리 등을 지적할 수 있겠냐며 자조와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노동조합(노조)은 연일 윤석헌 금감원장을 저격하는 동시에 성명서와 거리 항의 시위를 이어가며 공식적으로 '연임 반대'까지 내세웠다.
◇금감원에 큰 상처 채용 비리, 이번 인사 사태로 직원들 자긍심에 또 생채기
그런데 채용 비리에 연루된 직원 두 명이 이번 정기 인사에서 승진자로 이름을 올리며 직원들에게 또 한 번의 생채기를 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승진 인사 대상은 두 명. 과거 채용비리에 연루된 채모 팀장과 김모 수석조사역이 각각 부국장과 팀장급으로 승진 발령된 사항이다.
채 부국장은 2014년 금감원 변호사 채용 과정에서 임영호 전 국회의원 아들인 임모 변호사를 부당하게 합격시킨 일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견책 징계를 받았다. 김 팀장은 2015년 하반기에 실시된 2016년 신입 직원 채용과 민원전문역 채용 과정에서 3건의 채용 비리에 가담했다.
금감원 측은 해당 직원들이 충분한 징계를 받았고 고과 평가가 높게 나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조는 그 고과는 채용비리에 가담하고 받은 고과인데, 그 고과를 승진을 위한 프리패스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는 "스포츠 선수들이 도핑테스트에서 금지 약물 사용 사실이 적발되면 메달과 기록을 모두 박탈 당한다"면서 "금감원에선 그 반대로 작용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블라인드 앱에 직원들 불만 폭주 "과거 비위자 승진 안타까움 넘어 부끄러워"
금감원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블라인드 앱은 직원들이 회사 내부 문제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로,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해준다. 한 직원은 배구 학교폭력 사태와 금감원의 인사 사태를 비교했다. 채용비리에 대한 징계 처분을 받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최근 상당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내규상 승진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글을 보니 이른바 '배구 학폭 사건'이 오버랩 된다는 것.
특히 이 직원은 "사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편법을 쓸 유인이 있지만, 우리는 다르지 않나. 금융시장의 파수꾼이 아니냐"며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우리가 단지 성과가 좋아서 과거 비위자를 승진시킨다는 게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직원도 "승진한 분의 고과가 어쩔 수 없었다는데 과연 이 고과에 인사팀에서 받은 고과가 어떻게 포함되는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라면서 "인사팀이고 사건 발생 이전 고과를 받았으니 엄청 잘 받았을 것은 당연하고, 문제는 이걸 팀장 승진할 때 그대로 반영했다면 이건 마치 컨닝해서 처벌은 받았지만 그 성적은 인정해주는 결과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그럼 누구라도 컨닝하고 말지 않겠나. 징계는 한 순간이지만 근평은 절대적"이라며 "일을 잘못한게 드러나면 소급해서 최하 근평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잘못된 채용은 취소하려고 하는데 왜 잘못 준 고과는 바로 안 잡느냐. 이거야말로 착오에 의한 취소가 가능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인사 결정권자 윤석헌 원장에 대한 실망감과 책임론 표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가 지정 유보를 조건으로 내건 상위직급 축소에 따른 승진 제한과 성과급 등 임금 삭감 등은 일선 직원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 때문에 블라인드에서 직원들은 "도대체 원장님이 생각하시는 독립은 뭔가요"라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선 노조의 지나친 원장 저격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문제 있어도 내부 사람끼리 문제 삼지 말고 같은 편 되어주자라는 생각이 지금 사태를 불러왔다"는 등의 반박이 나오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거리 항의 시위를 한 날은 은행권 CEO들의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는 이른바 '빅 데이'였다. 그러나 금감원 안팎에선 심심치 않게 누가 누굴 징계하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날은 금감원 신입직원들의 첫 출근날이기도 했다. 금감원에서는 출근 시간인 8시 50분쯤 내부 방송을 하는데 신입들을 위해 제이슨 므라즈의 '럭키(Lucky·행운)'를 들려줬다. 이번 정기 인사를 본 신입 직원들에게 그 행운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공익성이야 어찌되든 상사의 지시를 받들어 고과를 받아 승진을 할 수 있는 행운을 바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