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 등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도록 ICJ(국제사법재판소) 판단을 받아달라"고 정부에 호소했다.
위안부를 비롯한 한일 과거사 문제를 국제 재판이나 중재에 회부하는 것은 일본의 우월한 국제사회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지난달 일본 정부의 주권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한국 법원 판결까지 나오는 등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빠지면서 출로가 거의 막혀있다.
이 할머니는 "나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면서 "여러 말 할 것 없이 양국이 이 책임을 가지고 국제재판소에 같이 가자"며 부득불 최후의 방법을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 "국제사법재판소 가자"…승산 충분, 지더라도 의미 있어
한국은 ICJ 소송 경험이 없고, 일본과 달리 자국 국적의 ICJ 재판관도 없지만 ICJ의 투명성이나 공신력, 과거 판례 등으로 볼 때 해볼만 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설령 재판 결과가 다소 기대에 못 미쳐도 소송 과정을 통해 일본의 식민·전쟁 범죄 행위가 국제적으로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고 돈 때문에 과거사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는 일본 측의 거짓 프레임을 통렬하게 깨뜨리는 기회도 된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가 제기된 지 30년이 흘렀지만 제자리를 걷거나 오히려 후퇴한 채 꽉 막힌 상황에서 출구전략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ICJ 소송은) 한일 분쟁을 더 악화시키는 길이 아니라 ICJ의 권위를 빌어 법적,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안"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바닥을 치고 올라가자는 주장인 셈이다.
◇"골치 아픈 문제" 日 수용 가능성 낮아…위안부 등 국제 공론화 기피
일본 정부는 이미 그에 앞서 한국 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 비판해왔기 때문에 국제 소송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한국이 ICJ 회부 카드를 빼들 경우 일본이 수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일본으로서는 국가적 치부인 위안부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국제사회에서 공론화 되는 것 자체를 원치 않는다.
일본이 국제 법정에 서게 된다면, 위안부 문제 등 식민·범죄 행위를 인정해야 하거나 최소한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과거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실제로 일본 국제법 전문가인 반자이 히로유키 와세다대 교수는 최근 "일본 정부로선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것"이라며 ICJ 소송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日 '독도도 함께 소송' 물타기로 역공할 수도…정부는 '신중히 검토'
따라서 일본 측은 만약 한국 정부가 이용수 할머니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ICJ를 회부를 제안하더라도 다른 이유를 들어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ICJ 소송은 어느 한쪽이 거부하면 성사되지 않는 구조다. 일방의 제안에 상대방이 호응하고 '특별합의'(special agreement)를 통해 구체적 소송 내용까지 합의가 이뤄져야 재판이 성립된다.
만약 우리 정부가 ICJ 제소를 결정할 경우, 위안부 제도의 불법성 등 본질적 문제를 강조하는 반면 일본 정부는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주권면제 등 절차적 문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는 당연히 이를 거부하겠지만 소송 내용을 놓고 옥신각신하며 첫 단추도 꿰지 못한 채 또 다른 지리한 공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만약 위안부 문제만 콕 집어서 ICJ에 갈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한일 간에는 이슈가 많아서 (일본이) 다 묶어서 가자고 한다면 가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며 "ICJ가 무조건 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ICJ 소송이 실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국의 피해 당사자들이 그간 꺼리던 국제 재판까지 수용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는 일본에 압박 효과를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이용수 할머니 등과는 계속 소통하겠다"고 했고 "ICJ 회부 필요성은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며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