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3)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자고 16일 한국과 일본 정부에 제안했다. 최근 우리나라 법원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확인했지만, 일본 정부가 정당성을 부인하자 국제법에 따른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이다.
이 할머니가 대표를 맡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추진위)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 중심적 해결을 위해 이 문제를 유엔 사법기관인 ICJ에 회부해 국제법적 해결을 모색할 것을 문재인 대통령께 촉구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 할머니는 "나는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전 세계에 가서 증언도 하고, 미국에 가서 결의안도 통과시키고, 샌프란시스코에 기림비도 세웠다. 일본에서도 재판을 했다"며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인정과 사죄를 받아야 한다. 이제는 방법이 없다. 우리 정부가 국제법으로 일본의 죄를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지난달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일본 정부가 항소기한인 23일 0시까지 항소하지 않으면서 이대로 확정됐다.
이에 이 할머니는 "일본은 판결을 무시하면서 항소조차 안 하면서 뻗대고 있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우리 법원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우기고 있다"며 "지금도 미국에서 하버드 교수를 시켜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ICJ에) 가서 완전한 해결을 하고, 양국 간에 원수 지지 말고 친하게 지내야 할 것 아니냐"며 "언제까지 이렇게 으르렁대기만 할 건가. 판결받아서 완전한 해결을 짓고, 사이좋게 지내자. 그래야만 우리 후손들도 마음 놓고 살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이 할머니는 준비한 내용을 읽다가 끝내 오열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이게(위안부 문제 해결) 오면 세계 평화가 온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이제는 이용수가 끝을 내겠다"며 "우리 학생들도 그렇고 일본 국민들이 서로 손을 잡고 웃을 수 있는, 세계 평화가 오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연세대 법학연구원 신희석 박사는 "ICJ는 소송 과정에서 과거 일본군 위안부 제도 자체에 대해서 당시의 국제법 위반이었다고 판결을 내릴 수 있다"며 "2011년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결국 독일이 승소는 했지만, 그 당시 독일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확인하고 넘어간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ICJ의 판결은 모든 회원국이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ICJ 판결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 구제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될 수 있으며 한일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제안 배경 이유를 덧붙였다.
그러면서 "ICJ는 소송 과정에 할머니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며 "직접적으로 소송 당사자가 되진 않겠지만 정부가 제출하는 자료의 피해자 자료로 등재가 될 것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다 기록으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설 연휴 전에 정부에 ICJ 제소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 추진위 구성원인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CARE) 김현정 대표는 "이미 설 전에 여성가족부 등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아직 별다른 회신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추진위는 위안부의 활동이 자발적 계약에 의한 것이었다고 규정한 하버드대 로스쿨 마크 램지어 교수 논문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삼갔다. 다만 김 대표는 기자회견 직후 취재진을 만나 "학자들의 논쟁을 통해 정리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며 "그 사람의 주장이 틀렸다고 해서 반드시 다 소송으로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