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노인들 "명절요? 친구 있어 외롭지 않아요"

서초구 거주 홀몸노인들 '친구모임방' 동고동락
"코로나19로 얼굴 못 보지만, 더 자주 전화·연락"

설날을 나흘 앞둔 지난 8일 낮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초등학교 앞 주택가. 골목 초입에 있는 이층집 반지하방 문에는 끄트머리에만 햇빛이 비쳤다. 방안에는 오후 3시인데도 형광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불 꺼진 간이 주방은 밤처럼 어둑했다.

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만난 강윤월(84) 할머니와 김여순(74) 할머니. 김태헌 기자
이곳은 강윤월(84) 할머니가 10년 넘게 혼자 산 집이다. 강 할머니는 "10년 넘게 여기서 살았지만 겨울에 방이 참 따숩고 좋아 난방을 따로 켤 필요가 없다"며 웃어 보였다. 옆에서 듣던 김여순(74) 할머니가 대뜸 "나는 저 침대 위가 좋다"며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돌침대를 가리켰다.

두 할머니는 서초구가 지원하는 '친구모임방'으로 맺어진 동무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강 할머니 방은 동네친구들 사랑방이었다. 같은 모임방 회원은 모두 5명. 강 할머니는 "침대가 바닥처럼 딱딱해서 좋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저 위에서 같이 밥도 먹고 테레비도 보고 화투도 치고 했다"고 말했다.


강 할머니처럼 홀로 살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은 전국에 약 159만 명(지난해 8월 기준)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홀몸노인 중 상당수가 강 할머니와는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전체 홀몸노인의 15% 정도가 주변과 전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은둔형 홀몸노인'이다. 더러는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혼자다.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67세 노인은 숨진 지 일주일 만에 우유 배달원 신고로 발견됐다. 이런 노인 고독사는 최근 3년간 절반 이상 늘었다. 2019년 한 해 무연고 사망자는 1천 명이 넘는다.

서울 서초구 '친구모임방' 과거 활동 모습. 서초구청 제공
서울 서초구 '친구모임방' 과거 활동 모습. 서초구청 제공
서초구는 지난 2015년 3월부터 홀몸노인들의 고독사 위험을 막기 위해 노인 5~7명을 '친구'로 묶었다. 이 중 방장 한 명을 정하고, 방장 집을 모임방으로 정해 서로 주기적으로 교류하도록 권장했다. 45명(9거점)으로 시작한 모임방 사업은 올해 180명(40거점)까지 규모가 커졌다. 강 할머니는 사업 초기부터 방장을 맡아 쭉 친구들을 이끈 모임방 '모범생'이다.

모임방은 회원 간 단순 친목만 도모하지 않는다. 서초구는 매년 노인들을 상대로 치매 검사를 진행하고 보건소 진료나 안마 시술 등을 지원한다. 모임방 회원들은 가상현실(VR) 체험실에서 생소한 VR컨텐츠를 체험하고, 봄·가을에는 국내 휴양지로 단체 나들이도 간다. 겨울에는 다 같이 김장을 하고 마을 주민을 초대하는 송년회도 연다.

하지만 1년 넘게 코로나19 여파로 이런 오프라인 모임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몸이 멀어졌지만 마음은 가깝게 하는 것이 요즘 친구모임방의 가장 큰 고민이다. 강 할머니는 "(회원들이) 생각날 때마다 방장인 내가 더 자주 연락하고 통화하는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밥은 먹었나, 잠은 잘 잤나' 물어주는 사람이 드물지 않나"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친구모임방' 회원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활동을 하고 있다. 서초구청 제공
서초구 '어르신행복e음센터' 직원들은 이런 교류를 지속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휴대전화를 잡는다. 날이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건강에 유의하라는 안내 문자를 보내기 위해서다. 태풍이 불거나 큰 눈이 오면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고, 최근에는 나갈 때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는 당부를 가장 많이 했다.

방장들은 이런 메시지를 일일이 회원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맡는다. 카카오톡이나 SNS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라 대부분 소통은 전화로 이뤄진다. 그렇게 따로 사는 노인들이 한 번 더 서로 연결된다.

매일 홀몸노인을 만나는 어르신행복e음센터 이지혜 사회복지사는 "최근에는 버섯 키우기나 방향제 만들기같이 비대면으로 동영상을 보고 노인들이 따라서 할 수 있는 비대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올해도 새로운 여러 비대면 활동을 시도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윤월 할머니가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서초구 새순교회로부터 받은 떡국 떡. 김태헌 기자
올해 설 명절에는 코로나19로 떨어져 사는 가족과 더 만나기 힘들어진 상황. 연휴 계획을 묻자 강 할머니는 말없이 한쪽에 둔 종이봉투 하나를 가져와 펼쳤다. 봉투에는 떡국 떡 한 봉지와 레토르트 사골국 세 개가 들어있었다.

"요 앞에 교회에서 주고 갔어. 우리한테는 이런 게 최고 좋아. 친구모임방 친구들이 있어서 또 최고 좋고, 이런 거 선물이라도 하나 받으면 그게 최고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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