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사를 '정부 정책에 대한 정치 수사'로 규정해온 여권에서는 "무리한 영장 청구였다"는 반발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부장판사는 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백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오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피의자의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고,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백 전 장관이 당시 산업부 장관으로서 직권을 남용해 한국수력원자력 및 그 관계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월성 1호기 관련 업무를 방해했다'는 검찰의 주장이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사실 및 그로 인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이 모두 증명돼야 하는데, 이 같은 불확정 개념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범죄를 해석·적용할 때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해석의 원칙 및 최소 침해의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피의자에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으며, 이미 주요 참고인이 구속된 상태이고 관계자들의 진술이 확보된 상태여서 피의자에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백 전 장관을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분류하고 조사한 검찰 내부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백 전 장관은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의 실체는 물론, 청와대의 개입 여부를 가르는 데 있어서도 핵심 인물로 꼽혔다.
이런 가운데, 특히 법원의 기각 사유 중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다는 부분은 검찰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백 전 장관 측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입장을 이어왔다. 전날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대전지법에 출석한 백 전 장관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국정과제였다"며 "장관 재임 때 법과 원칙에 근거해 적법 절차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백 전 장관은 물론 여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전지검은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긴 어려우나, 더욱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는 공식 반응을 내놨다.
검찰은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거나 불구속 상태에서 백 전 장관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예정된 수순으로 여겨졌던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에 대한 소환조사 일정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