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항렬의 대표주자는 '현대'의 신화를 일군 故정주영 명예회장에서 비롯됐다. 정 회장이 1세대 6남 1녀 가운데 장남이자, '왕회장'이었다. 2001년 타계한 데 이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2005년), 정인영 한라건설 명예회장(2006년), 정희영 여사(2015년) 등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한국 자본주의 성장과 맞물린 '영'자 1세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을 남긴 정주영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일어나 1946년 현대자동차 등 계열사들을 설립하면서 한때 현대를 국내 재계 서열 1위로 끌어올린 한국 산업화의 일등공신이었다.
정 회장의 별세 1년 전인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이 벌어지며 거대 그룹은 쪼개졌다.
'포니정'으로 불린 4남 정세영 명예회장은 1967년 초대 현대차 사장에 취임해 32년간 자동차 외길 인생을 걸으며 자동차 수출 신화를 이뤄냈다. 1999년 장조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게 자동차 부문 경영권을 넘겼다.
1세대 중 마지막으로 작고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1958년 8월 금강스레트공업이라는 이름으로 KCC를 창업했다. 2003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조카며느리 현정은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인 이른바 '시숙의 난'을 벌였지만 패배로 끝났다.
"현대는 정씨 가(家)의 것"이라는 말을 남긴 시숙의 난 당시 정상영 명예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6.2%를 사들여 현대그룹의 경영권 방어를 도왔으나, 2004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현정은 회장 측이 완승하면서 8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범현대家 '몽'자 2세대→'선'자 3세대로 진행 중
현대가의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2000년 동생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적통' 자리를 두고 벌인 '왕자의 난' 끝에 현대차 계열 회사만 들고 갈라서 나와 홀로서기를 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을 재계 2위로 일으켰으며, 작년 10월 장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2006년 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장남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현대가 3세 중 가장 먼저 회장 직함을 달았다.
4남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은 1990년 작고했으며, 아들로는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대표이사 사장과 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의 남편인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사장이 있다.
고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 차녀 정영이 현대무벡스 차장, 장남 정영선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도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7선 국회의원 출신인 6남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도 현재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 중이다.
7남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과 8남 정몽일 현대엠파트너스 회장은 아직 일선에 있다.
◇KCC, 승계 마무리…또 다른 '왕자의 난' 없다
한라그룹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가 나면서 정인영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원 회장이 취임한지 1년 만에 그룹이 해체됐다. 정몽원 회장은 2008년 현대차그룹의 도움으로 만도를 다시 사들이며 그룹 재건에 성공했다.
'포니정'의 장남 정몽규 HDC 회장은 범현대가 2세대 중 가장 왕성하게 대외 활동을 하는 인물이다. 정몽규 회장은 2019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서 HDC를 모빌리티그룹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불발됐다.
별세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큰아들인 정몽진 회장이, KCC글라스는 둘째인 정몽익 회장, KCC건설은 셋째인 정몽열 회장이 나눠 맡으며 승계 작업이 마무리된 상태다.
이밖에 성우그룹은 정순영 명예회장이 1997년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며 몽선(현대시멘트 회장), 몽석(현대종합금속 회장), 몽훈(성우전자 회장), 몽용(현대성우홀딩스 회장)씨 등 4명의 아들이 계열사 경영권을 승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