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올해 정책 추진 방향을 발표했지만, 기존 대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산재 예방을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재 예방' 시민사회 눈높이 높아졌지만…뒷걸음질 치는 정부 정책
특히 중대재해가 주로 발생하는 건설업 현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사망으로 이어지기 쉬운 추락·끼임 사고에 관한 '3대 안전조치' 준수 여부를 집중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지방자치단체·민간산재예방기관과 협력을 강화하고 산재 관련 통계를 내실화하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하지만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새로 제정되고,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이른바 '김용균 법'으로 전부개정되는 등 산업재해 예방에 관해 한껏 높아진 사회적 기대에 비하면 이번 정부 발표는 기존 정책에서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시 '임기 내 산재사고 절반 감축'을 국정목표로 내세웠지만, 이날 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정책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축은 어려운 목표"라고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
◇기존 대책 되풀이·보강에 그쳐…"지자체 감독권 강화 요구 등 변화, 정부가 주도해야"
지자체가 자체 발주공사‧수행사업하는 약 1만개소에는 3대 안전조치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안전보안관'을 활용해 위험현장을 발굴하겠다는 대책도 시대의 흐름에 비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미 서울시와 경기도가 안전어사대, 노동안전지킴이 등을 도입하고 근로감독권 위임까지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노동부가 선제적으로 지자체와의 업무 분담을 정리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법 제정의 무게감이나 사회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제기한 데 비해 정부의 정책 방향이 너무 허술하다"며 "지자체의 산재예방 역할도 이천 물류참사 등 이후 종합대책을 통해 발표됐지만, 지자체 발주 공사에 한해 필요시 합동 점검하는 수준만 제기해 아쉬움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노동인권 사각지대' 영세사업장, 정부 대책도 '언 발 오줌누기'에 그쳐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이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도록 밀착형 컨설팅을 제공하고, 공정·장비를 개선하기 위해 비용 등을 지원하도록 '안전투자혁신사업'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은 물론, 근로기준법 등 각종 노동관계 법령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투자혁신사업'이나 비슷한 성격의 '클린사업'에서 우선 지원한다고 언급한 데 그쳤을 뿐, 별도의 대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나마 '안전투자혁신사업', '클린사업'도 일시적인 장비 지원에 그칠 뿐인데다, 사업주의 선의가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어 이들 사업장의 산재 예방 환경을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박기형 상임활동가는 "우선 근로감독 역량의 강화 및 인력의 양적, 질적 증대가 필요하다"며 "근로자건강센터를 사업장, 지역 단위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고 제안했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부터 안전보건 관련 정보를 취합해 유해위험요인이 확인되고 산재사망사고·직업병 등이 자주 발생하는 사업장부터 관리체계를 수립할 수도 있다"며 "위험성 평가에만 한정된 사업주 대상 교육도 현장실정에 맞는 폭넓은 안전보건교육이 되도록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민간위탁관리업체에 맡겨진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근로자건강센터나 일종의 지역산업보건소 등 공공 인프라를 확충해 맡도록 전환해야 한다"며 "법적 공백으로 남은 안전보건관리 법제도를 마련하고, 전태일 3법을 통해 노동권을 보장해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자 산재 예방 참여 보장, 질병 및 직장 내 괴롭힘은 언급도 안돼
앞서 김용균법과 중대재해법 제정을 추진할 당시 산업현장의 가장 절박한 요구는 위험한 상황에서 일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현행 산안법에는 '노동자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며 노동자의 작업중지(대피)권을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가 작업을 중단하면 회사로부터 '너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 '작업 지연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는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을 때 불이익을 가한 사업주 등을 형사처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의 형태로 현장 노동자의 산재 예방 활동을 보장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작업중지 명령과 근로감독, 작업재개 결정 등의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 확대 등을 요구해왔지만, 이번 정책 추진 방향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은 "국내 질병사망자 수가 사고사망자 수를 넘어선 지가 오래인데 손도 대지 못하고 눈에 띄는 사고재해만 집중하고 있다"며 "질병재해는 급성중독 등이 아니면 사전 예방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재해의 조짐만 보이면 곧바로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직장 내 괴롭힘 역시 전면적인 근로감독이 매우 어렵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신고하면 곧바로 사업장을 조사할 수 있도록 조사 권한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