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지난 1973년 당 조직지도부장, 74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오르며 후계자로 내정된 것처럼,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당 제1부부장인 김여정이 8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과 당 부장직을 차지하면 명실상부한 북한 권력의 2인자, 더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의 유고 상황을 가정한 후계자 지정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국정원도 지난해 11월 국회 국정감사 보고에서 "김여정이 8차 당 대회에서 위상에 걸맞은 당 직책을 부여받을 가능성도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결과는 일단 '김여정 배제'로 나타났다. 김여정은 정치국 후보위원에서도 강등되고 당 부장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만 당중앙위원회 위원에는 20번째로 호명됐다.
김여정의 직책이 강등됐다고 해서 그의 정치적 위상이 약화됐다고는 볼 수 없다.
김여정은 북한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백두혈통이다.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을 상시적으로 보좌하고 조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중요 직책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김여정의 탈락은 잠시 쉬어가기, 보호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가 총괄한 대남·대미 분야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8차 당 대회 인사에서 대남·대미 라인은 전반적으로 위축된 양상이다.
그러나 김여정의 위상에 큰 변화가 없다고 해도 이번 인사에서 '밀린 것'은 사실이다.
김 위원장을 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등 1인 유일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2인자는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8차 당 대회의 나머지 인사도 대체로 권력 부서 간 견제를 강화해 어느 한 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후계자 1인이 맡았던 조직책임비서와 조직지도부장을 분리해 각각의 힘을 뺀 것으로 관측된다.
총정치국과 별도로 당에서 군사업무를 담당하는 군정지도부, 지난 2013년 장성택 처형이후 사라졌던 당 행정부의 기능을 살린 것으로 보이는 법무부도 조직지도부의 기능을 분리한 것이다.
법무부는 "사회의 정치적 안정과 질서를 유지·담보"하는 차원에서 당 내에서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중앙재판소, 중앙검찰소 등을 두루 관장할 것으로 보인다.
조직지도부 등 권력 핵심기구의 기능을 분리하는 한편 당 조직과 당 간부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했다.
당 중앙검사위원회의 규율 감독 권한 강화를 대폭 강화하고 관련 사업의 집행을 위한 당내 전문부서로 규율조사부를 신설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이번 당 제8차 대회에서 당 중앙검사위원회의 권능을 높이도록 한 것은 전당에 엄격한 규율과 혁명적 기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며, "당 안에 당규약과 당 정책을 엄격히 이행하는 강한 규율을 세우고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현상을 뿌리 뽑자면 규율 감독 체계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아울러 "당 중앙검사위원회가 당 안에 중앙집권적 규율 더욱 강하게 세우고 중앙의 유일적 영도실현에 저해를 주는 당 규율 위반 행위들과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 특세, 전횡을 비롯한 일체 행위들을 감독조사하고 당 규율 문제를 심의하며 신소 청원을 처리하고 당의 재정관리사업을 검사하도록 임무를 새롭게 규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규율조사부는 당내 규율 위반과 권력 남용행위에 대해 수시로 감사를 벌여 중앙검사위에 보고하고 결정 사항의 집행을 지도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인민들의 억울한 사정을 청취하는 신소 청원도 중앙검사위원회의 기능으로 언급한 만큼 주민들을 통해 당원들의 각종 비리에 대한 제보를 받고 이를 처리하는 일도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비서에 오른 김 위원장이 권한을 일정하게 위임하며 당 중심의 국정운영시스템을 강화하되, 그 속에서 일하는 당 조직과 당원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통제를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