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혁명적 문헌'에는 핵잠수함 개발 등 핵 무력 중심의 국가방위력 증대 계획은 자세히 제시됐으나 경제 건설을 위한 새로운 경제 전략노선은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따라 북한이 8차 당 대회에서 경제건설총력집중 노선보다는 경제·핵 병진 노선을 보다 강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의 국가발전5개년 계획 "기본종자는 여전히 자력갱생"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사업총화보고에서 5년 전 7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실패를 자인하면서, 향후 5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현 단계의 경제전략은 "정비전략, 보강전략"으로,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 사이의 유기적 연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 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해 우리 경제를 외부적 영향에도 흔들림 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정상궤도에 올려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정비전략 또는 보강전략은 통상적으로 중장기적 경제계획이 실패했을 경우 일정 기간의 완충기를 통해 경제 계획을 정비하거나 보강할 때는 쓰는 용어이다.
◇北 경제전략, 새로운 방안 제시보다는 '정비 보강'의 성격
김 위원장이 제시한 5개년 계획의 기본 주제가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으로, 경제적 비전 제시보다는 경제사업의 정비 또는 보강 차원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김 위원장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총적방향은 경제발전의 중심 고리에 역량을 집중하여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을 관건적 고리로 틀어쥐고 투자를 집중하여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생산을 정상화하며 농업부문의 물질 기술적 토대를 강화하고 경공업 부문에 원료, 자재를 원만히 보장하여 인민 소비품 생산을 늘이는 것으로 설정됐다”고 말했다.
경제발전의 중심 고리에 해당하는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에 투자를 집중해 인민소비품 생산을 증대하고 인민생활 향상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토대의 구축”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총적 방향’으로 설정했으나, 북한이 지난 2017년 11월 국가 핵 무력 완성 선언 이후 내세운 '경제발전총력집중' 노선, 구체적으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등 각종 시장화 조치에 대한 언급은 이번 사업총화보고에는 빠졌다.
대신 전반적으로 경제 분권보다는 국가통제를 다시 강화하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국가경제의 자립성과 계획성, 인민성을 강화하자면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기능을 높이고, 생산물에 대한 통일적인 관리를 실현해야 한다"며,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실현하기 위한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가적인 일원화 통계체계를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민간 분야 상업과 관련해서도 "현 시기 우리 상업이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중요한 과제는 상업봉사 활동 전반에서 국가의 주도적 역할, 조절 통제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새로운 5개년계획은 현실적 가능성을 고려하여 국가경제의 자립적 구조를 완비하고 수입 의존도를 낮추며 인민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요구를 반영했다"고 했다.
◇경제 분권화보다는 국가 경제 통제능력 강화
'국가의 경제 조직자적 기능', '생산물의 통일적 관리', '국가의 조절 통제력 회복 등과 같은 김 위원장의 발언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수해 등 3중고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 시장화 조치를 확대하기보다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재집권화, 즉 경제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수입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대목도 코로나19 방역에 따라 북중무역이 사실상 단절된 현재 상황을 자립 경제구조 정착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사회주의 경제 강국 건설을 위한 새로운 비전 제시는 찾기 어려웠으나 핵 무력의 증강 방침은 더욱 확고히 했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우리 공화국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하고, 핵잠수함 개발 공식화, 탄두 안에 여려 개의 다른 탄두를 탑재하는 다탄두 개별유도기술 개발, 신형 탄도미사일에 적용할 마하 5이상의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 개발, 군사정찰위성 운영 등 거침없는 핵 무력 증강계획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특히 핵 무력을 대외정책에도 투영시켰다.
강력한 국가 방위력은 "결코 외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에로 추동하며 그 성과를 담보하는 위력한 수단”이며, "전반적 조선 혁명을 상승시키기 위한 당 중앙의 전략적 구상 실현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진다"는 것이다.
핵잠수함 개발 등 핵 무력을 대미 외교와 조선 혁명과도 연결시킨 대목이다.
미국을 "전쟁 괴수"이자 '최대의 주적"이라고 표현한 김 위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미국의 대조선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며, "앞으로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남측에 대해서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을 "비본질적인 문제"로 격하시키면서, "현 시점에서 남조선 당국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다만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남북)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주어야 한다. 북남관계(남북관계)가 회복되고 활성화 되는가 못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면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남북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은 경제건설 및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자력갱생, 자급자족, 경제시스템 정비보강 전략을 강조하면서도 핵 무력을 중심으로 한 국가방위력 강화 입장을 표명했다"며, "8차 당 대회에서 제시된 새로운 노선은 사실상 보다 강화된 경제·핵 병진노선"이라고 평가했다.
◇공세적 대남 대미 메시지 이유? 핵무력 장황한 설명으로 체제 결속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은 2017년 국가 핵 무력 완성이후 경제·핵 병진노선을 승리로 결속한 뒤 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을 제시했으나, 이번 8차 당 대회 사업총화보고에는 이런 전략노선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경제·핵 병진노선의 결과적인 반복"이라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8차 당 대회가 전체적으로 제재 등 3중고에 따른 주민 불만을 해소하고 체제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당 대회라는 점에서 김정은의 핵 무력 강화실적을 장황하게 설명하였고 이러한 위기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임을 설명하기 위해 공세적인 대남 대외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동엽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기본적으로 당 대회는 인민들에게 지난 기간 계획한 것의 성과를 평가받고 목표를 제시해 통치 정당성을 부여받는 내부 행사"라면서, "북한이 당 대회에서 핵과 군사력 강화를 강조한 것은 대외적인 의도도 있지만 기본은 인민들에게 안보적 차원의 안심을 주고, 경제 발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거침없는 핵능력 계획 발표는 향후 핵군축 회담 의도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핵 능력의 지속적인 증대 계획을 아주 자세하게 밝힌 것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경우 비핵화 대화가 아닌 핵군축에 나서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한미연합훈련의 중단, 대북 제재의 일부 해제 등 선제적 조치가 없을 경우 대화 재개도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