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대응 만큼이나 부실한 후속조치도 논란이다. 관련 경찰관 상당수가 경징계에 그친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양천경찰서장을 파면하라는 청원은 하루 만에 동의 수가 20만명을 넘어섰다.
◇양천서 경찰 5명, 1월 중순 징계위…과장·계장 수사책임자는 경징계 그쳐
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이달 중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3차 신고 사건을 처리한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수사팀장 등 수사관 3명과 학대예방경찰관(APO) 2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다.
앞서 1~2차 학대 신고를 처리한 경찰들에 대한 징계는 가벼운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특히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현직 여성청소년과장은 '주의' 처분이, 여청계장은 '경고' 처분이 결정됐다. 여청계장은 같은 양천서 내 다른 부서로 인사조처됐다.
◇전문기관도 초동대응 미흡 책임 크지만…진상조사나 징계 없어
경찰뿐 아니라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도 초동대응에 실패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경찰과 달리 아보전은 과실 여부에 대한 자체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강서아보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과실 여부 등 진상 조사에 대해서는 복지부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정인양의 학대 신고가 세 차례나 사실상 묵살된 것을 두고 경찰과 아보전이 서로 '네 탓'을 하며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경찰은 지난해 5월과 6월, 9월 세 차례 접수된 학대 신고를 모두 내사 종결하거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3차 신고는 수사에 착수조차 안 했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112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해 9월23일 정인이가 병원에 다녀간 직후 이뤄진 3차 학대 신고 당시 소아과 의사인 신고자는 "아동학대로 (이전에도) 몇 번 신고가 들어간 아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어 "아동보호기관에서 몇 번 출동했던 아이"라고 말한 뒤 "강서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이 계속 관찰하고 있는 아이"라고 재차 강조했었다.
경찰은 수사를 하지 않은 결정이 아보전과의 협의 끝에 나온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지난 11월16일 경찰청 차장 간담회에서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 즉시 112신고가 접수되는 가정폭력과 달리 아동학대는 전문성을 요구해 사안을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아보전(아동보호 전문기관)이나 의사의 판단을 종합적으로 듣고 (수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섭 양천경찰서장도 4일 통화에서 "1차 신고는 아보전과 함께 판단해 내사 종결했고, 2차는 입건해 수사를 진행했었다(불기소 송치). 3차 때도 공동 조사를 한 뒤 아보전에서 추가로 병원에 데려가는 등 일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전문기관의 판단을 존중하고 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취지다.
반대로 아보전 측은 초동대응 책임이 경찰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서아보전 관계자는 "수사 의뢰를 했는데도 경찰에서 양부모에 대해 두 번이나 무혐의 처분을 했다. 수사 기관에서 이런 결정이 나면, 양부모 태도가 확 바뀌고 사안에 개입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아보전의 관리 감독을 맡는 서울시 관계자도 "1, 2차 신고 때 수사의뢰, 3차 신고는 경찰 112신고로 접수돼 공동 조사를 진행했다"며 "수사 여부를 결정한 것은 아보전이 아니라 경찰이다. 수사권도 없는 상태에서 할 일은 충분히 한 것"이라고 했다.
여성변호사회 이수연 변호사는 "경찰과 아보전 양쪽 모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세 번이나 학대 신고가 있었는데도 가해자(양부모) 말만 듣고 당연히 했어야 할 분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