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는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통해 애도하는가 하면 재발방지에 힘쓸 것도 다짐하고 있다.
가해자인 양부모의 신상을 공개하고 이들에게 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23만 명을 넘었다.
가정은 물론 지역사회와 국가,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숨을 거둔 한 어린 생명에 대한 애달픔과 분노가 동시에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15개월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은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는, 학대를 신고한 한 소아과 의사의 회고는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가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을 당시 온 몸은 멍 투성이었으며 심각한 골절과 장기 파열의 흔적까지 발견됐다.
양부모에 의한 학대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음을 여실히 보여준 터라 충격이 크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음은 물론이다. 정인이를 죽음에서 구할 수 있었던 3번의 기회마저 사회적 시스템은 전혀 작동할 의지도, 역량도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국민적 공분을 산 아동학대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여행용 가방 안에서 학대로 숨진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사건', 9세 소녀가 부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건물 지붕을 타고 탈출한 '창녕 아동학대사건', '여수 아동학대사건'등 지난 한해만도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전에도 학대로 한쪽 눈이 실명된 5세 '지호사건', '개 목줄 어린이 사망사건'등 아동학대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반복됐다.
그 때마다 정부는 입버릇처럼 법과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여론 무마용 대책을 내놓느라 법석을 떨기 바쁘다. 그러나 늘 그 때뿐이다.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일명 울산 계모 사건으로 불리는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처벌을 강화할 것을 골자로 한 아동학대 특례법은 지난 2014년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경찰도 이미 지난 2016년 학대예방 경찰관(APO) 운용 대책을 마련했고, 지난해 11월 말에는 보건복지부와 아동학대 관련 특별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은 '아동학대 형량을 2배로 높이는 동시에 가해자 신상 공개와 관련 입법의 신속한 추진'을 약속하고 나섰다.
현재 전국의 학대 피해아동의 수는 연평균 46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반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대부분 시·군·구에 단 1명씩 3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인력부족과 더불어 이들이 전문성보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는 열악한 환경도 개선돼야 할 문제다.
법과 제도, 시스템을 촘촘히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적 관심을 뒷배로 아동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정부 의지가 우선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동학대는 강력범죄라는 인식도 확산해야 한다.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각종 대책들이 분노로 들끓는 여론 무마용이어선 안된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대책이 유야무야되는, 뒷북대응만이 되풀이 된다면 제2, 제3의 정인이는 또다시 나올 수밖에 없음을 간과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