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 입었다" "남친이랑 간다" 괴롭힘 당하는 어린이집 교사들

직장갑질119, 500명 대상 조사
63% "괴롭힘 경험"…일반 직장 2배
72% "직장갑질 아직도 여전"
"어린이집 4곳 중 1곳, 근로계약서 교부 안해"…근기법 위반
"신고해도 돌아오는 건 불이익"…가해자 70% 원장·대표
"업종 특성상 작은 규모 多"…사생활 침해 위험도 더 높아

#1."연차를 쓰고 여행을 갔는데, 원장 선생님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짧은 치마를 입었다', '남자친구랑 같이 갔는데 참 그렇더라',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남자랑 여행갔다'며 동료교사들, 학부모들에게 제 험담을 했습니다. 순간 수치스러웠고 모욕감이 느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사진을 올리는 건 개인의 자유인데 왜 잘못한 것처럼 느껴질까요?"

#2."교사회의 때 원장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저를 비난하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시말서를 작성하라고 하셔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청에 신고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증거 있냐?', '증거 있어도 직장 갑질로 원장을 처벌할 수 없다'였습니다. 구청에서 수탁한 어린이집이라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노동청으로 가셔야 한다', '원장이랑 잘 이야기해보겠다'라고만 하더군요. 도대체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하는지, 신고를 한다고 나아지긴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신고를 하고, 민원을 넣었단 이유만으로 괴롭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사진=자료사진)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교사들이 사생활 침해 등 상시적인 '직장 내 괴롭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규모 사업장이 많은 업종 특성상 이들은 일반 직장인들보다 두 배에 가까운 빈도로 직장갑질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재단법인 '공공상상연대기금'과 함께 직장갑질119 직종별모임인 보육교사119 회원 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3.2%(316명)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직장갑질119가 지난 10월 직장인 1천명을 상대로 같은 조사를 했을 때 직장 내 갑질을 경험해봤다고 응답한 비율(36%)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갑질금지법)이 시행된 후 변화를 체감하는 질문에도 대다수(72.2%)가 '직장 내 괴롭힘이 줄지 않았다'고 답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역시 일반 직장인들의 인식(43.1%)보다 훨씬 부정적인 결과다.

우선 이들은 근로계약서를 서면으로 교부받는 등 기본적인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일하고 있는 기관에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교부받았나'라는 설문조항에 72.6%(363명)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23.2%는 계약서를 따로 교부받지 못했고, 계약서를 작성조차 하지 않은 보육교사도 4.2%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17조은 근로계약서와 관련해 "서면을 근로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어린이집 '4곳 중 1곳' 꼴로 이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직장 내 갑질을 겪었다 응답한 이들의 78.2%는 그 내용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하다' 28.5% △'심각한 편이다' 49.7% 등 후유증이 가볍지 않다고 호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이들 중 50.6%는 '진료나 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의 '가해자'는 어린이집의 원장이나 이사장 등 대표직이 70.6%로 가장 많았다.

(사진=자료사진)
이로 인해 교사들은 괴롭힘을 당해도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49%) △'회사를 그만두었다'(31%) 등 8할이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신고했다는 인원도 9.2%에 그쳤다.

그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서'(62%)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19.6%) △'다른 어린이집으로 이직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13.1%) 등이 꼽혔다.

갑질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고 응답한 6.6%(33명)마저도 '반려되거나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17명)는 답변이 51.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한 '조사기간 사측이 피해자에 대해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도 84.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불어 실제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고 답변한 인원도 절반을 넘어서는 것(51.5%·17명)으로 파악됐다.

보육교사들은 이같은 직장 내 갑질이 일소되기 어려운 이유로 '5인 미만' 등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 '법적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지적했다.

응답자들의 42.2%(211명)은 '규모가 작아 직원 간 관계가 긴밀해 사생활 침해나 소문 등이 발생한다'고 원인을 지목했다. 괴롭힘의 '주체'가 상하관계에 있는 원장이다 보니, 원장을 배제한 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애로점을 토로한 사례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원장의 책임회피로 제대로 조사할 거란 기대가 없기 때문'(37.2%·186건)이란 응답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연합뉴스)
직장갑질119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고 조치의무 불이행에 대한 규제가 없으며, 적용범위가 협소한 반쪽짜리 갑질금지법 때문에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갑질 원장'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류상 명시된 휴게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됐다. 응답자의 85%는 휴게시간에 영유아와 분리된 채 쉬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고, 87.8%는 점심식사 역시 '원생들을 돌보면서 한다'고 답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돌봄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 개선 방안으로 △'휴게시간 보장 등 근무여건 개선'(76.8%) △'직장 내 괴롭힘을 하는 원장에 대한 처벌 강화'(59.4%)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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