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류보리 작가, 쓰면서 가장 후련했던 장면은

[노컷 인터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장편 드라마 데뷔한 류보리 작가 ②
극중 채송아 16회 엔딩은 드라마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 둔 장면
가장 기분 좋게 썼던 장면은 송아와 준영이 귀여웠던 '떡볶이' 장면
'브람스' 세계의 리얼리티 완벽하게 구현한 소품들, 화면에 안 나온 것 정말 많아
'브람스', 함께 일하는 것의 행복 느낀 작품

지난달 20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류보리 작가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은 극중 월드클래스 피아니스트 박준영 역을 연기한 김민재 (사진=SBS 제공)
드라마 작법을 알려주는 곳이 있다고 해 발을 들인 후, 예상보다 더 큰 재미와 힐링을 느껴 본격적으로 드라마 공부에 몰입했다고 밝힌 류보리 작가. 그는 '드라마 작가는 골방에서 혼자 글만 쓰는 직업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직업'이란 말을 듣고 정확히 어떤 뜻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작업을 하면서 협업의 즐거움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이렇게까지 진심이라고?" 하며 놀라워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슈만의 곡 '트로이메라이'로 시작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크레센도 : 점점 크게'로 마침표를 찍었다. 드라마를 처음 쓸 때부터 송아의 16회 엔딩 장면을 생각해 두었다는 류 작가는, 마지막 회 대본에도 '크레센도'와 관련한 인사말을 남겼다.

CBS노컷뉴스는 첫 번째 장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호평 속에 마친 류보리 작가를 지난 22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류 작가는 특히 이 드라마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깊은 애정을 표현해 온 시청자 '단원'들에게 진심으로 큰 감사를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일문일답 이어서.

7. 모두가 소중하겠지만 특히 아픈 손가락이었던 회차가 있나요. 꼽기 어려우시면 가장 후련하거나 기분 좋게 썼던 부분(장면 대사 상황 등)을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여러 개도 가능합니다.

15회와 16회의 모든 장면을 기분 좋고 후련하게 썼는데, 대본을 받으신 감독님과 여러 스태프분들, 배우분들이 연락을 주셨을 때 가장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쓰면서 가장 후련했던 장면은 16회 준영(김민재 분)과 엄마(김정영 분)의 대화("엄마, 이혼하세요. (중략) 엄마 나는요, 엄마가 엄마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와 16회 엔딩(송아가 밝은 조명의 무대로 걸어 나가는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포용하는 결말은 내고 싶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란 준영과,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들이 어렵고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낸 엄마의 사이는 조금이나마 회복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송아(박은빈 분) 외에도 준영이 마음 기댈 곳이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했고 15년간 부모 때문에 마음고생 해온 준영을 조금은 토닥여주고 싶었거든요. 이 둘이 살가운 모자 관계가 되진 못하겠지만요.

류보리 작가가 쓰면서 가장 후련했다고 밝힌 장면 중 하나는 박준영(김민재 분)이 엄마(김정영 분)에게 엄마 인생을 살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사진='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캡처)
그래서 준영의 졸업 연주회 후 엄마가 준영의 연주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는 말과 함께 "잘 지내. 행복하게"라는 말을 하게 하면서 준영의 마음을 건드리게 하고 싶었고 졸업식 후 준영과 엄마가 마주 앉아 대화 나누는 장면을 썼습니다. 이 장면을 쓰고 나자 준영에게 "준영아, 그동안 참 애썼다. 장하다"하고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었습니다. 방송으로 본 김민재 배우의 표정 덕분에 준영의 지난 15년이 떠오르면서 준영이 더 애틋하고 안쓰럽게 느껴졌고, 이 장면을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아의 16회 엔딩은 이 드라마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생각했던 엔딩 장면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조금 지칠 때마다 16회 엔딩을 빨리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저에게는 소중한 장면이지만, 방송으로 본 송아의 엔딩 장면(무대로 걸어 나가는 순간 송아의 얼굴)은 박은빈 배우의 얼굴 덕분에 정말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단단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는 송아를 보니 마음이 찌르르하고 벅찼습니다.

가장 기분 좋게(?) 썼던 장면을 꼽자면 16회의 떡볶이 PPL인 것 같습니다. PPL이지만 자연스럽게 녹이고 싶어 대본을 쓰기 전에는 고민이 되었는데요, 이 장면에 꼭 들어가야 하는 광고 대사와 상황 설명을 듣자마자 어떻게 써야 할지 바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송아와 준영의 행복한 한 때를 보여주면서도 두 사람의 성장한 모습과 가까워진 관계(준영이 송아에 무조건 맞추려다가 결국 자신의 입맛을 고백하는 것)를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장면은 제가 써놓고도 송아와 준영이가 너무 귀여워서 감독님과 프로듀서에게 대본을 보낸 후에 "떡볶이 씬 저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여기 좋지 않으세요? 송아랑 준영이 귀엽지 않으세요?"하고 몇 번이고 '답정너'처럼 대답을 강요했던 기억이 납니다. 배우분들이 굉장히 잘 살려주신 덕분에 방송 보신 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그 외에는 드라마 자체가 코믹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로 많이 진행이 되지만 디테일한 지문을 쓸 때 저는 늘 신이 나 있었습니다. 사실 극의 전개에 중요한 디테일들은 아니지만 브람스의 세계 속에서 꼭 챙기고 싶은 디테일들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이사장님의 장례식장에 들어온 조화 리본을 몇 개 써드렸을 때나(피아니스트 승지민 등), 식당이나 카페 장면의 메뉴를 정할 때(예를 들어 '난자완스'), '월간 피아노' 잡지 표지의 각종 기사 제목… 이런 디테일들을 만들 때 제가 브람스의 세계 속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늘 기분이 좋고 혼자 신이 났었는데, 제가 써드린 것 이상으로 디테일을 완벽하게 챙겨주신 제작진과 소품팀 덕분에 화면에서 그런 것들을 확인하며 더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류보리 작가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엔딩은 드라마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 두었다고 밝혔다. (사진='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캡처)
8. 매회 음악 기호가 쓰이고, 음악도 등장인물의 사연과 얽혀 있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쓸 때부터 내심 시청자들이 발견해 주길 하고 바랐던 포인트가 있다면 알려 주세요. 음악과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조연출 감독님과 소품팀, 미술팀분들이 리얼리티를 완벽하게 구현한 소품들을 만들어주셨는데, 화면에 비치지 않은 소품들이 정말 많고 화면에 나왔더라도 디테일이 화면에서 잘 보이지 않은 것들이 많아 정말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수경(백지원 분)의 교수실에서 제자들의 스승의 날 기념 종이접기 작품이 화면에 나왔는데요. (수경의 책상 뒤에 있습니다) 이 종이접기 포스터에는 제자들의 메시지가 포스트잇으로 붙어있는데, 포스터가 화면에 가까이 잡힌 적도 없지만 소품팀에서 포스트잇 각각의 글씨체를 다 다르게 해서 정말 진짜 학생들이 만들어준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경후문화재단 로고가 있는 온갖 사무용품도 있고요.

주인공들의 악기 케이스도 모두 전공생들이 많이 쓰는 브랜드로 색상까지 캐릭터와 맞춰서 구매했고(해나는 빨간 케이스/정경의 경우에는 특히 더 비싼 케이스), 전공생이나 연주자들이 보통 활을 2개 이상 넣고 다닌다는 설정도 드라마 줄거리와 별 상관이 없지만 모두 디테일하게 챙겨주셨습니다.

화면에 나온 적 없는 명함도 다 만드셨고요. 음대 복도 게시판의 각종 공지사항과 포스터는, 제가 촬영장을 방문했을 때 보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진짜 음대 게시판'을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게시판이 한두 개도 아니었고 카메라에 전혀 잡히지 않았는데도요…

이런 소품들을 제작진만 알고 있어서 정말 아쉽지만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정말로 존재하는 것 같은 브람스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하기에 조연출 감독님과 소품팀, 미술팀에 정말 찬사와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화면에서 아웃 포커스되어 흐리게 잡히는 소품이나 배경을 보실 때 '(잘 안 보여도) 다 진짜다'라고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류보리 작가가 가장 기분 좋게 썼다고 밝힌 16회 '떡볶이' 씬 (사진='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캡처)
9. 마지막 회 대본에 '여러분의 크레센도를 응원합니다'라고 쓰셨다고 하는데, 그 말을 적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종방연이 없어서 제가 브람스 팀의 모든 분들을 직접 뵙고 인사드릴 기회가 없었습니다. 중간에 촬영장을 방문하긴 했지만 촬영장에서는 제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회 대본을 보내드리면서 이 작품에 많은 시간과 애정과 진심을 아낌없이 보내주신 브람스 팀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작가의 마음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본 마지막에 짧게 글을 적어서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을 적을까 고민하다가 16회 부제이기도 한 '크레센도' 대사(16회 영인의 대사: "내가 제일 작은 순간이 바꿔 말하면 크레센도가 시작되는 순간")가 떠올라 마지막 인사로 적게 되었습니다. 저 대사는 브람스 팀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지켜봐 주시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회 대본을 보시고 여러 제작진과 배우분들이 연락을 주셨는데, 제 진심이 그분들께 조금이나마 닿은 것 같아서 저도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1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만들었던 모든 이들과 시청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해 주세요.

드라마 작가는 골방에서 혼자 글만 쓰는 직업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직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리로는 이해했었지만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작업하면서 '함께 일하는 것'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 참여해주신 '우리' 브람스 팀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 순간이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이렇게까지 진심이라고?" 하며 놀라워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분들과 즐겁게 작업했기에 그것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이미 이 드라마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브람스 팀분들이 함께해주신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고 싶어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는데, 많이 부족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분들께도 예상치 못한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브람스의 인물들을 아끼고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특히 '단원'분들께 진심으로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사진='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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