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정밀 부검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유족들은 "신경이나 심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구두 소견을 전달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건강하던 20대 청년은 왜 퇴근 직후 욕조에 웅크린 채 세상을 떠났을까.
故 장덕준 씨와 함께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A씨로부터 그 이유를 들어봤다.
그는 "쿠팡은 파트별 노동강도 차이가 심한데 특히 덕준씨가 맡았던 스파이더 업무 강도는 최상"이라고 했다.
상품이 담긴 바구니를 '토트'라고 하는데 이 토트의 무게는 적어도 몇kg, 많게는 15kg을 넘기기도 한다.
덕준씨가 맡았던 스파이더는 이 토트를 3단씩 쌓은 수십kg 더미를 포장대로 밀어주는 일을 했다.
그런데 물류센터 각 층마다 일하는 속도는 다르기 마련. 이럴 때는 운송 기계인 자키 위에 토트를 12개씩 쌓아 다른 층으로 보내주는데 이 역시 덕준씨의 일이었다.
덕준씨가 무릎 치료를 받았었던 이유도 이 일 때문. 많게는 100kg이 넘는 무게를 한 꺼번에 엘리베이터에서 꺼내고 옮겨야 했기에 온 몸무게를 실어 순간적으로 힘을 주는 일이 잦았을 수밖에 없다.
A씨는 자신도 이 일을 몇 번 해봤는데 당시 무릎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고 했다.
이처럼 스파이더가 '힘을 써야하는 일'은 하루 8시간 근무 중 수십번씩 반복됐고 '로켓 배송'이라는 쿠팡 시스템 때문에 아침이 다가올수록 더 분주해졌다.
특히 쿠팡은 UPH라는 단위로 패커들의 업무 속도를 실시간 체크한다. 층별로 속도 경쟁을 붙이기도 하고 속도가 낮은 패커는 따로 불러 혼을 낸다.
그만큼 속도전이 중요하기에 패커를 지원하는 스파이더가 역시 발 바닥에 불이 날 만큼 뛰어다녀야 한다.
패커들에게 포장 비닐과 박스를 수시로 공급해주고 벌크 포장(동일 상품 대량 묶음 배송) 등 일부 패커의 업무도 함께 맡아야 했다.
관리자들이 해야 할 컨베이어 벨트 오류 복구, 신입 아르바이트생 교육, 해당 층 직원들이 마실 물 구비 등도 그들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스파이더는 한 층당 한, 두 명만 배치된다.
A씨는 "최저임금이 확 오르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회사가 스파이더를 점차 줄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한 층에 6~7명의 스파이더가 있었는데 이제는 한, 두명으로 줄어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은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축소가 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야간 근무를 한 이들을 탓하는 목소리도 있다.
A씨는 이에 대해 "새벽배송이 있긴 하지만 쿠팡은 주로 낮 시간에 배송이 이뤄지기 때문에 물류센터엔 밤에 일할 TO가 훨씬 많다. 또 주5일 일해봤자 월 200만원 수준만 받는다"고 반박했다.
또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같은 상황에서 낮, 밤을 가릴 수도 없다는 게 야간 노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A씨는 "그만두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며 "쿠팡의 빠른 배송 이면에 희생당하는 소수의 노동자가 있다. 그런데 쿠팡에선 그 노동자가 아프거나 그만두면, 마치 부품처럼 다른 사람을 구해 채우면 된다고 여긴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덕준씨와 A씨처럼 일자리가 간절한 이들은 힘들고 아파도 참아왔다. 이들이 쿠팡에서 일하는 동안 수차례 병원에 다니면서도 산업재해 신청을 못한 이유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다.
A씨는 쿠팡의 극심한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해 인력 충원과 확실한 업무 분배, 고용노동부의 노동감독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故 장덕준 씨 유족분들께 애도를 표한다"며 "산업재해가 인정되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쿠팡은 직원의 근로 강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한다. 물류센터 단기직 지원자는 원하는 날짜, 시간, 업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유족측 주장에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본 A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방적으로 배정해주는 업무에 반발하면 다음날 출근에 제약이 생긴다"고 재반박했다.
덕준씨 유족들은 여전히 쿠팡의 사과와 적극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