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동포들의 소중한 건강과 행복이 제발 지켜지기를 간절히 빌겠습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지난 8일, 12일 주고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서로의 신뢰를 재확인하고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염려하는 애틋한 내용이었다.
남북이 물밑에서는 여전히 소통의 끈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친서를 보낸지 열흘만에 서해안에서 끔찍한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친서 교환은 북한이 왜 이번 피격 사건을 서둘러 사과했는지에 대한 답을 줌과 동시에 그간 청와대와 우리 군의 소극적 대처 이유를 짐작케 한다. 김 위원장의 친서 내용에 기대, 종전선언 메시지를 준비하면서도 우리 국민의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오판하면서 늑장 대처를 하지 않았는지, 외교안보라인의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종자가 바다에 떠밀려 北에 있다" 보고받고 靑은 무얼했나?
북한군이 실종자를 사격한 것은 이날 밤 9시40분으로 추정된다. 무려 6시간동안 북한군과 실종자는 모종의 대치를 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간동안 청와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역추적해보면 상황 판단과 대처가 상당히 안이했음을 알 수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미 군으로부터 실종 당일인 21일 밤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실종자 관련 첫 서면 보고가 이뤄진 것은 22일 오후 6시30분. 해상추락사고로 바다를 떠돌던 실종자를 북측이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북한이 실종 국민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중대한 정보가 문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실종자는 아직 생존해있었지만 이후 문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뚜렷히 밝혀진 것은 없다.
◇실종자 숨지고 靑 움직였지만 '첩보 신빙성'부터 분석…대통령에 보고까지 10시간 걸렸다
김정은 위원장이 보내온 친밀한 내용의 친서에 근거해, '설마 잔인한 피격이 일어났겠는가'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장관들이 심야 회의 때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서 당시 분위기를 추측할 수 있다.
최근 친서 교환 등 남북 물밑 교류를 알았던 청와대 참모들은 신속히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 단체로 충격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 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전세계에 강조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
결국, 심야 장관 회의가 끝나고도 6시간 뒤인 아침 8시30분에야 문 대통령에 '우리 국민이 사살당했다'는 대면 보고가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피격 첩보가 들어온지 무려 10시간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한 밤중이라도 왜 대통령에게 곧바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는지는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청와대는 북한이 보내온 사과문과 김 위원장과의 친서까지 연달아 공개하며 사태 수습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실종 국민이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안 뒤에 청와대와 우리 군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유의미한 대응을 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울러 상식적으로 한참 늦은 대통령 보고,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는데 수시간이 걸린 정황은 참모들의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안이한 상황 판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추후 점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