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민자당부터 국민의힘까지 '개명의 역사'

2020-09-02
반년 만에 새 간판 내건 '국민의힘', 기본소득·경제민주화 기치로
반년 만에 새 간판 내건 '국민의힘', 기본소득·경제민주화 기치로
미래통합당이 지난 2일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교체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5월 27일 취임 후 99일 만에 당의 간판을 바꾸고 당의 가치와 비전을 담은 정강정책을 개정함으로써 쇄신의 첫 단계를 마무리했다. 당의 설명에 따르면 국민의힘이라는 당명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함축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를 당의 기본정책으로 내걸고 약자와의 동행을 선언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2020-04-15
미래통합당, 4·15 총선 참패
미래통합당, 4·15 총선 참패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했다. 양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의석을 합치면 민주당은 180석을 확보해 '공룡 여당'으로 거듭난 반면, 통합당은 103석으로 개헌저지선(100석)을 겨우 턱걸이로 넘겼다. 종로 지역구에서 민주당 이낙연 후보에 패배한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15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2020-02-17
보수정당 통합, '미래통합당' 출범 
보수정당 통합, '미래통합당' 출범
올해 치러진 4·15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유승민 주도의 새로운보수당, 이언주 주도의 미래를향한전진4.0과 중도·보수 시민사회단체 400여곳 등 보수 진영이 통합을 위해 미래통합당을 신설했다.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의석 총 253석 가운데 84석을 획득했고,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 의석 전체 47석 중 19석을 차지했다. 미래한국당은 2020년 5월 29일 미래통합당과 합당하면서 소멸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2017-02-13
'박근혜' 지워야 산다…자유한국당으로 당명 개정
'박근혜' 지워야 산다…자유한국당으로 당명 개정
새누리당은 2016년 12월 29일 인명진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공식 출범해 당 쇄신 작업에 착수했다. 2017년 2월 13일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강령과 당헌·당규를 개정했다. 오랜 진통 끝에 2017년 11월 3일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켰다. 이를 계기로 바른정당에 합류했던 김무성 등 9명의 국회의원이 이를 계기로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2016-12-09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새누리당 '흔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새누리당 '흔들'
집권 4년째인 2016년 중반,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져 전국민적인 촛불시위가 일어났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비박계' 새누리당 의원 30여명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탈당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정하면서 박근혜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재임중에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이 됐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2012-12-19
박근혜 대통령 당선
박근혜 대통령 당선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사진=자료사진)


2012-02-13
박근혜 주도로 쇄신…당명 '새누리당'으로 교체
박근혜 주도로 쇄신…당명 '새누리당'으로 교체
이명박 정권 말기 대통령 측근비리와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등으로 한나라당은 또 다시 위기에 처한다. 2011년 12월 19일 한나라당은 당의 전면적 쇄신을 목표로 박근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교체했다. 새누리는 '새롭다'의 '새'에 나라 또는 세상의 순우리말 '누리'를 붙인 것으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뜻한다. 그해 4월 박근혜는 제19대 총선에서 원내 과반수가 넘는 의석(152석)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사진=자료사진)


2007-12-19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돼, 한나라당은 10년 만에 집권 여당이 됐다. (사진=자료사진)


2004-03-12
무리한 탄핵 주도…한나라당 '역풍'
무리한 탄핵 주도…한나라당 '역풍'
야당이었지만 원내 1당이던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관련 발언 등을 문제삼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2004년 3월 12일 야당 국회의원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기습적으로 가결됐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잇따랐고, 그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참패 위기에 처했다. 이때 재선 의원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후광과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는 당의 핵심인사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1997-11-21
김영삼 탈당…이회창의 '한나라당'
김영삼 탈당…이회창의 '한나라당'
김영삼 정부 말기 외환위기, 측근들의 비리로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는 가파르게 떨어졌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김영삼 대통령의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지원 의혹이 터지면서 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과의 갈등이 깊어진다. 급기야 이회창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신한국당 탈당을 요구했다. 그리고 김대중의 새천년국민회의에 합류를 거부한 '미니 민주당'과 합당을 추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1997년 11월21일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한나라당'을 창당했다. 이회창은 제15대·16대 대선에 출마하지만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사진=자료사진)


1995-12-06
김영삼 전 대통령, '신한국당' 창당
김영삼 전 대통령, '신한국당' 창당
민자당은 통합 전 3개 정당의 인맥이 당내 계파로 존속하며 서로 갈등했다. 1995년 3월 김종필은 탈당해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같은 해 6월 열린 첫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은 참패했으나, 자민련은 대전·충남·충북·대구·강원 지역을 석권했다. 이후 민자당은 제5·6공화국의 부정과 비리 의혹 등에 대응하고 대외적인 이미지 쇄신을 위해 1995년 12월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꿔 재창당했다. 또 이회창·박찬종·홍준표, 진보정당인 민중당 출신 이재오·김문수·이우재 등을 영입해 개혁성을 강화했다. (사진=연합뉴스)


1990-01-22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보수정당의 뿌리 민주자유당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보수정당의 뿌리 민주자유당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당시 민주정의당 총재),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청와대에 모여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과반의석인 150석에 미달한 125석을 얻으면서 헌정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이 이루어졌다. 통일민주당은 59석을 확보해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총재)이 이끌던 평화민주당에 제1야당 자리를 내줬다.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 총재는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한 집권을 꾀했다.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은 전체 299석 가운데 218석을 차지하는 초거대 여당으로 출범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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