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을 스크린으로 처음 이끈 영화는 '꽃잎'(1996)이다.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이정현은 '꽃잎'에서 말 그대로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고, 다수 영화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쥔다. 연기 데뷔작, 첫 주연작으로 단번에 충무로 기대주로 주목받는다.
그는 이후 '침향'(1999) '하피'(2000) '파란만장'(2011) '범죄소년'(2012) '명량'(2014)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 '군함도'(2017) 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다.
"'꽃잎'을 찍어서 그런 것 같아요. 강인해 보여야 하거나 처절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등의 캐릭터만 제안이 들어와요. '반도'의 민정 캐릭터도 생각을 해보면 그런 것 때문에 감독님이 연락을 주신 것 같아요."(웃음)
노래만이 아니라 콘셉트, 의상, 퍼포먼스 등 그가 하는 건 모두 화제의 중심에 섰다. 배우이기도 한 이정현은 무대 위에서도 노래 가사에 맞춰 감정 연기를 퍼포먼스에 녹여냈다.
한 분야에서조차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힘든데, 이정현은 배우와 가수 모두 정점을 찍는다. 부침을 겪기도 하지만, 지금도 배우로서 꾸준히 활약하며 필모그래피를 탄탄하게 채워나가고 있다.
이정현이 밝힌 자신의 롱런 비결은 의외로 '내려놓음'이었다. 그는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사실 기대감을 덜고 많이 내려놨다.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하다"며 "기대감을 많이 낮추니까 조금만 좋은 일이 있어도 두 배로 기쁘고, 그러다 보니 정신건강에도 좋은 거 같다. 내려놓는 법을 배우면서 잘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정현으로 하여금 내려놓음을 알게 했다.
"'꽃잎' 때 정말 정점으로 주목받았죠. 그런데 제가 성장도 덜 하고 애매한 나이이다 보니 역할이 안 들어왔어요. 그렇게 내려갔다가 다시 가수로 정점을 찍고, 또 원체 가수 생명이 짧아서 다시 내려갔어요. 그러다가 다시 한류스타로 정점을 찍고, 다시 내려가고…. 그때부터 기대 안 하는 걸 배웠어요."
이정현이 말하는 기대를 내려놓겠다는 말은 많은 것을 바라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소중히 하겠다는 말과 닿아 있다. 작은 것에서도 기쁨과 소중함을 알게 된 만큼 배우로서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는 이를 방증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최고였다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면서 '잘 할 수 있어' '잘 될 거야' 하는데 다시 내려가고를 반복하니 진짜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취미생활을 찾았고, 그게 요리였어요. 취미가 있고 만족할 수 있는 걸 만들어 놓으니 좋은 게 들어오던 안 좋은 게 들어오던 들어온다는 자체만으로 감사함을 느끼게 됐어요. 그러다가 잘되면 두 배로 기쁘고 좋은 거죠."(웃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