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정치 이력 내내 동반자이기보다는 주로 경쟁자였던 박 전 의원을 파격 발탁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남북 관계의 위기 속에서 단행된 이번 인사가 주는 '메시지'가 중요했던 만큼 문 대통령은 대북 정보통이자 베테랑 정치인으로 강한 추진력이 있는 박 전 의원을 발탁하면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박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부장관을 맡았던 2000년 4월 남한 측 밀사로 파견돼 북한 측 대표와 비밀협상을 벌이면서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이번에 국가안보실장으로 내정된 서훈 내정자도 당시 박 의원과 함께 비밀협상에 참여했던 멤버로 이미 호흡을 맞추며 남북 관계의 새 역사를 만든 경력이 있다.
하지만 대북 정보통으로 명예만 있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 2003년에 대북송금 특검으로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북한에 4억5천만 달러를 불법 송금한 것이 문제가 돼 옥고를 치렀다.
이후 복권돼 18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4선 국회의원으로 정치 분야에서 활약하는 동안에도 북한과의 소통 창구 역할은 이어졌다.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측 조의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김양건 당시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와 만났고, 2014년 김정일 3주기에는 직접 방북해 이희호 여사 명의 조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박 전 의원은 오랜 경험과 상징성이 있는 인물인 만큼, 북한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책을 설계하고 총괄하는 자리에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배치하고, 북한 문제에 있어서 돌파력과 추진력을 보일 수 있는 국정원장과 통일부장관에 박지원 전 의원과 이인영 의원을 각각 내정해 균형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대북 정보통이기는 하지만 박 전 의원이 지난 대선 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원했고,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자리를 두고 문 대통령과 치열한 경쟁을 했던 이력이 있어 이번 인사는 세간을 놀라게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총선 압승을 바탕으로 하반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꾸려감에 있어서 야권 인사라도 능력있는 인물은 폭넓게 기용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인사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면서, 야권 인사라도 능력과 여건에 따라 발탁하겠다는 인사의 포용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활발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문재인 정부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박 전 의원은 국정원장에 내정된 직후 SNS를 통해 심경을 밝혔다.
박 전 의원은 "제 입에 정치의 정(政)자도 올리지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며 "역사와 대한민국, 문 대통령을 위해 애국심을 갖고 충성을 다하겠다. SNS 활동과 전화 소통도 중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