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녀 살해후 자살'에 관대할까

일반적인 아동학대에 대해 공분하는 것과 달리 온정적
부모,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자살인지 감수성 부족
온정주의적 시각 거두고 부모를 가해자로 바라봐야

(일러스트=연합뉴스)
"가해자에게 엄벌이 처해지길" VS "오죽 힘들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사회적 공분을 산 '9세 아동 여행가방 감금·학대 사망사건'. 대구지검 천안지청은 지난달 29일 이 사건의 가해자인 40대 동거녀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최근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판결도 있었다. 지난 5월 29일 울산지법은 생활고를 겪던 중 자녀를 살해한 후 목숨을 끊으려 한 엄마 2명에 대해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라며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는 피살, 법의 언어로는 살인"이라고 밝혔다.

두 사건은 모두 아동학대 범죄이자 살인 사건이다. 그러나 관련 기사 댓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전자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오죽 힘들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온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범죄다. 2009년부터 최소 279명(미수 포함)의 미성년 자녀가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한 달에 두 명 꼴로 미성년 자녀가 영문도 모른 채 부모의 죽음에 동반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아동학대 보다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은 낮아 보인다.

이는 '자살인지 감수성'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CBS노컷뉴스에 "대중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할 때 분노한다. 9세 아동 여행가방 감금·학대 사망사건에 공분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부모는 자살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고, 자녀를 살해한 후 목숨을 끊는 부모를 가해자로 여기지 않는다. 비극이 되풀이 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지난 1일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또다른 판결이 있었다. 수원지법은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장애에 시달리던 중 남편과 공모해 자녀 2명을 살해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30대 여성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명목 하에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 행위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시였다. 생활고 등 안타까운 가정사가 자녀 살해 후 자살을 합리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유현재 교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은 보호자인 부모가 가해자라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 이를 온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며 "이러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부모를 가해자로 정의하는 등 언론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벼랑 끝에 선 가족이 자녀 살해 후 자살을 마지막 선택지로 삼는 건, 국가의 사회 안전망에 대한 불신과 무관하지 않다.

국제 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2월 성명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통계를 구축,공표하고 위기의 가정을 찾아내 실질적인 조치를 강구하라"며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예방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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