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꿰찬 것은 1987년 5월 12대 국회 후반기 이후 33년 만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체제(87년 체제) 에서는 처음이다.
미래통합당은 "일당독재, 의회 독재가 시작됐다"(주호영 원내대표), "국회를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시키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것"(최형두 원내대변인)이라며 민주당의 '거만한 폭주'로 몰아가고 있다.
◇ 여당도 야당도 처음 경험하는 상임위원장 독점 체제
지난 33년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집권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21대 국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당장 이달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위한 후속법안 처리와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이 여야 대치 전선에 놓여있다.
민주당과 정부는 21대 국회 초반,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남북철도 연결 공사 근거법이 되는 철도산업발전법, 5·18과 세월호에 대한 왜곡과 모욕을 금하는 역사왜곡금지법, 야당 의원 압박용으로 비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국회의원수당법 처리 등도 강하게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 개혁을 뒷받침할 굵직굵직한 법안들이 야당의 견제를 벗어나 민주당 주도로 처리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한민국 헌정이 파괴되는 것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갈 바를 모르겠다"고 토로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우선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에 비례해 각 교섭단체 대표의 요청으로 의장이 선임하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모두 가져가면서 모든 상임위에서 특정 안건 심사가 민주당 주도로 이뤄질 수 있다.
통상 상임위원장은 각 위원회 개의권과 회의 진행, 의사 정리, 사무 감독권을 가진다. 특정 안건을 소위원회에 배분해 심사할 수도 있다.
국회법에는 각 교섭단체 소속 의원이 간사를 맡아 위원장 직무를 대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사고 등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대리 업무 범위도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미 21대 국회에서 압도적 과반을 차지한 만큼, 상임위원장 '독식'으로 '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이란 지적은 오히려 정치적 공세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통합당이 의회 독재, 헌법 유린을 프레임 삼아 민주당을 압박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국회는 충분한 토론 시간을 거친 다음 본회의 표결을 통해 의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곳"이라며 "상임위원장이 여당 출신인지 야당 출신인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대 국회 때 통합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야 4당이 공수처 설립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았냐"며 "통합당 말대로라면 그때가 의회 독재가 돼야 하는데, 오히려 통합당 출신 의원이 법사위원장이었다"고 설명했다.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안전장치가 있고 혹시나 모를 발목잡기를 방지하기 위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 등의 제도가 있기에 상임위원장의 소속 정당은 중요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20대 국회는 캐스팅보트를 쥔 제2야당이 존재해 민주당이 각 상임위에서 과반을 점하지 못했지만, 양당 체제로 환원된 21대 국회에서는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해 상임위 표결로도 안건 심의·의결을 할 수 있다.
통합당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통합당 원내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은 사회권을 행사하면서 물론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안건을 어느 정도 지연시킨다든지는 할 수 있다"며 "하지만 민주당이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이고, 법사위원장까지 가져가면서 모든 법안을 자기들 뜻대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각 상임위에서 표결로 하자고 하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이) 가져갔을 때는 상임위원장 일부를 (통합당이) 가져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민주화 이후 여당의 첫 상임위원장 '독식' 사태로 국회 내 합의 정신이 훼손됐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지만, 민주당의 일방적 의사진행과 법안처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