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으로 요약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7월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신베를린 선언'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정국 속에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이 구상은 9개월만에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현실이 됐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10·4 정상회담 이후 10여년 만에 성사된 4·27 남북정상회담의 막전막후에는 '윤건영'이 있었다. 그는 2018년 3월과 같은 해 9월 대북 특사 자격으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평양을 찾아 김정은 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했다. 1차, 3차 남북정상회담 실무 준비에 모두 관여한 셈이다.
청와대 김의겸 당시 대변인은 3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특사 명단을 발표하면서 "특사 구성이 지난 3월과 동일한 것은 방북 목적의 효과적 달성과 대북협의의 연속성 유지 등을 주요하게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내며 각종 보고서를 대면 보고한 그는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했고 그만큼 신임도 두터웠다.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좌초 위기에 처했을 때,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긴급하게 머리를 맞댄 5·26 원포인트 2차 남북정상회담 주변에도 그가 있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관계가 공전할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로 판문점 회동을 '깜짝' 제안했고, 김 위원장이 이에 응하면서 기적으로 6·30 남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역시 그는 판문점에서 한미 정상들의 하차 지점과 이동 경로 등을 북미 실무진과 치열하게 논의하며 제2의 4·27 판문점 회담을 꿈꿨다.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소천했을 때, 북측으로부터 판문점에서 조전을 받아 부산 빈소로 들어간 것도 윤건영이었다. 북한은 국제 무대에서 다른 국가들과 다른 외교 방식을 구사한다. 진입장벽은 높지만 한번 신뢰를 준 인물에 대해서는 경계감을 낮춘다. 평생을 통일운동에 매진해 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북한의 신뢰가 대표적이다.
21대 국회에 입성한 윤건영 의원은 올 한 해를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관계를 견인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로 규정했다. 상임위를 외교통일위원회로 지원해 실제로 배정받았고,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에 힘을 쏟기로 했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기 위해 남북관계 진전을 한 발 뒤로 물렸던 2019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며 아쉬워했고,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2년 안에 남북관계 개선을 '불가역적'으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이날 새벽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남조선 당국이 15일 특사 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고 전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특사 파견 제안은 정부간 은밀하게 이뤄지고 제안 자체를 공격의 소재로 삼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윤 의원이 발끈한 셈이다. 또 국제 외교 관례를 깨는 북한의 행동이 향후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 정상화에도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부부장이 문 대통령의 6·15 선언 20주년 메시지를 "철면피한 감언이설"이라고 일축한 것도 윤 의원의 화를 돋운 것으로 분석된다. 여당 주변에서는 윤 의원의 강경 대응이 놀랍지만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 의원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된 지난 16일에도 "속에선 천불이 난다. 까맣게 타들어 간다"면서 북한의 최근 태도 변화를 속상해했다. 하지만 윤 의원은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해 내겠다. 이미 가 본 길이다. 제대로 갈 수 있다", "저는 앞으로도 그 신뢰와 예의를 지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최소한의 기본이기 때문"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윤 의원 측 관계자는 "북한의 강경 모드에 윤 의원이 많이 속상하고 참담해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여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