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부장은 지난 17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한미워킹그룹'에 대해 "훌륭했던 북남 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북남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이라는 것은 덥석 받아들고 사사건건 북남 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 바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쟁점이 된 한미워킹그룹은 남북 관계가 한창 '화해 무드'로 진입했던 2018년 11월 20일 출범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9.19 평양 공동선언까지, 남북 정상 간 만남이 무려 세 번이나 성사되며 가장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던 시기다.
한미 정부 간 비핵화, 대북제재, 남북협력 등을 수시 조율하기 때문에 사실상 남북문제 전반에 관여하는 협의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초 목적인 남북문제의 한미 간 공조보다는 한국이 미국의 대북제재 기조에 맞춰가면서 오히려 남북관계 '경색'에 일조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여권을 중심으로 한미워킹그룹 해체론까지 대두됐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봤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최근 '창작과 비평' 여름호 인터뷰에서 "미국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오케이' 하기 전까지는 '올스톱'하라는 압박을 가했다"고 고백했다.
두 차례 대북 특사 경험이 있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워킹그룹이 본연의 취지와 다르게 왜곡되게 나타나고 있다. 남북관계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일각에서 비판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통일부 행정 경험이 있는 인사들도 한 목소리로 미국의 '허가제'나 다름없는 한미워킹그룹 체제를 비판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18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의 한미워킹그룹 제안을 덥석 받은 것이 패착이다. 미국하고 마주 앉은 한미워킹그룹에서 사실상 (미국의) 결재를 받는 구조가 돼버렸다. 그 틀 속에 남북관계가 제약이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UN 대북제재위원회에서 허용된 것도 한미워킹그룹에서 막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남북문제는) 대화로 풀 수밖에 없다. 말만 중요한 게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면 한미워킹그룹의 중지 등 구체적인 실천이라도 나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조언했다.
비단 정치권뿐만 아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체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등 민간에서도 한미워킹그룹으로 인해 남북관계에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혼란에 빠진 개성공단 업체들에 따르면 한미워킹그룹 출범 이후, 남북협력 사업은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지난해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공단 방문을 위한 방북신청도 5번이나 거부당한 뒤 5월에서야 나왔다.
개성공단비상대책위원회 정기섭 위원장은 17일 가진 긴급기자회견에서 "재작년 10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공단 방문하는 것을 북한과 합의까지 했는데 갑자기 11월 한미워킹그룹이 생기면서 일이 모두 틀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남북협력 사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건 결과가 현 사태를 야기했다. 미국은 더 이상 남북협력을 방해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실련은 한미워킹그룹 대신 남북워킹그룹 설치를 제안했다.
경실련은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남북관계의 당사자로서 주도적 해법을 제시해야 함에도 '한미워킹그룹'에 의지해 지난 2년이 넘도록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에 있어 손을 놓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북특사를 파견해 남북당국 간의 책임 있는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남북관계를 오히려 방해하는 '한미워킹그룹' 대신 '남북워킹그룹'을 설치해 당사자들이 주도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